“저희는 건설과 관련된 업체입니다. 얼마 전 국가 입찰에, 자격 요건을 갖춰 응찰해 낙찰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런 사실과 직접 연관성도 없는 공무원이 찾아와 민원이 제기돼 그런데 ‘왜 입찰 했느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응대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문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지요. 이런 저런 민원이 발생했다고 각종 부서가 돌아가면서(?)업장을 방문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공무원이 법규조차 모르고 와서 오히려 저희들에게 물어보는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기업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데스크를 지키다 보면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제보를 재구성해 봤다.
물론 한때는 업무와 관련된 공무를 보거나, 억울한 일이 있어도 담당자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시절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방자치화가 진행되고, 자치단체장이 선출직으로 바뀌고 나서부터 전세는 역전 됐다.
표를 우선시 한 단체장들이 ‘민원 우선처리’를 중요 지표로 내걸기 시작했고, 공무원들은 인사권자인 자치단체장의 ‘눈 밖에 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현장을 누빈다.
민원이란 사전적 의미로 ▲국민이 정부나 시청, 구청 등의 행정 기관에 어떤 행정 처리를 요구하는 일 ▲어떤 구체적인 일과 관련하여 주민 개개인이나 집단이 바라는 바를 의미한다.
글로만 보면 이렇게 순기능적 역할을 하는 제도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젠 변질된 일부 악성 민원이, 진성 민원이 발붙일 자리를 빼앗고 있다.
악성 민원의 대표적인 경우가 ‘기업체나 개인 괴롭히기’ 혹은 ‘눈엣 가시 제거하기’식 다발성 민원 제기라 할 것이다.
여기에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에서 오는 자질 문제가 더 피민원인을 괴롭히고, 경영 의지마저 흔들어 놓는 경우가 발생한다.
어떻게 이런 악성 민원이 발생하는 것일까.
민원의 주체로 보면 관련 업종 종사자 이거나, 소위 민원 대행인을 통하는 방법이 가장 흔하게 목격 된다.
업계의 시시콜콜한 뒷이야기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관련 종사자니, 민원의 내용만 들어봐도 ‘대충 어떤 부분에서 발생한 민원’인지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직접 나서기 힘들거나 꺼려지는 경우, 민원 대행인을 내세우는 방법이 있다.
이들은 관공서와 비교적 친분 관계가 깊거나, 출입이 자유로운 계층을 골라 민원을 풀어놓고 ‘대신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소문에는 여기에 민원 대행비가 지급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런 민원 대행인의 경우 집요함을 필수로 한다는 후문이다. 끝까지 공무원을 괴롭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민원인의 신분은 어떻게 될까?
가장 첫 번째로는 ‘외지에서 사업하러 온 자’다. 이런 현실은 지역사회의 결속력이 강하거나, 비교적 정체돼 있는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다. 그동안 우리끼리 잘 해왔는데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이 껄끄럽거나, 못마땅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역 내에서도 새로운 기법의 경영·기술을 도입 한 자다. 따라가기는 힘들고 자금이나, 실력에서 경쟁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동종 관계자들은 암묵적으로 스크럼을 짜고, 돌아가면서 집단·다발성 민원을 제기한다. ‘털어 먼지 안나는 자 없다’가 그들의 주장이다.
이제 민원이 제기되면 다음은 공이 공무원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공무원의 태도다.
‘공익을 위한 제보를 아무리 해봐도 공무원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볼 맨 소리를 자주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런데 악성 집단 민원 일수록, 공무원의 행보는 ‘빠르고 집요’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관련 법규나 규정조차 모른 채 현장을 방문한다는 것이, 그간 접한 많은 피민원인들의 하소연이다.
공무원의 업장 방문은, 그들은 잘 느끼지 못 할 만큼 많은 여파를 안겨준다.
우선은 직원들의 술렁임이다. 여기에 거래처 관계자의 방문이라도 겹치게 되면, 업주는 그야말로 ‘坐不安席’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이 악성민원 제기자들이 노리는 진짜 목적일지 모르겠다.
민원이 발생했으니, 현장 실사라는 과정상 처리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악성 민원 일수록 절대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엔 공무원이 찾아와 민원인이 한 말을 그대로 재생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일 때 가 자주 있습니다” 한 피민원인의 하소연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공무원들은 순환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유착을 깬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이 제도는, 전문성 부재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屋上屋’이다.
민원제기에 방문한 공무원의 입장도 피민원인은 이해한다. 그것이 확인 차 온 한 번의 방문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악성 일수록 방문은 잦아지고, 심지어는 민원인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 한 발언에 이어, ‘왜 자꾸 문제를 만드느냐’는 핀잔을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왜 공무원이 민원인의 대변인 노릇을 하게 되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이런 잦은 악성 민원은 지역사회에도 많은 악영향을 미친다.
우선 공무력의 낭비를 들 수 있겠다. 말 그대로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무원의 ‘헛된 발길질’로 행정력의 누수 현상이 발생한다.
다음으로는 기업인의 의지를 꺾는 문제다.
투자를 통해 재화와 용역을 발생시키고, 여기서 얻어진 이익으로 다시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재투자의 의지를 현저히 약화 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확보라는 문제와도 직결되게 된다.
惡性 民願 亡國論 이런 현상은 차마 입에 올리기 예민한 상황이지만, 시민도 공무원도 이미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제 자치단체장이 나서서 민원 해결의 새 컬리큐럼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방법론에 따른 용역도 불사해야 할 것이다.
일부 악성 민원인과 피민원인,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 공무원.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언젠가는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도 좀 더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끈질긴 민원인의 독촉에 더 이상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이런 저인망식 민원처리 방식이 나중엔 누구에게 ‘득’이 되고 ‘실’이 되는지 살펴야 한다.
민원인도 더 이상 ‘아니면 말고’식의 민원제기를 자제해야 한다.
옛말에 ‘業은 제 발등에 떨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