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많아 (매도가) 급한 집 팔아드립니다' '지하든 꼭대기든 성심껏 팔아드림'.지난 10일과 주말 사이 기자가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등촌동, 양천구 신월동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을 다녀보니 대출이 많은 집을 대신 팔아준다는 광고지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 일대는 올해 상반기만 해도 '대출받아 신축 빌라를 매입하라'고 권하는 광고지와 현수막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 이제는 '대출을 갚기 어려운 집을 대신 팔아주겠다'는 전단지가 즐비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집을 팔아주겠다는 전단지 속 번호로 전화를 걸자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이 일대 '부동산 중개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많이 받아 갚지 못하고 있는 집을 빨리 처분해드린다"면서 매도를 원하는 집의 위치와 크기, 형태, 구매 시점과 함께 집을 담보로 얼마를 대출받았는지 등을 물었다. 이어 "지하든 꼭대기든 대출 규모가 크든 작든 어떤 집이라도 당장 팔아주겠다"고 자신감을 보이며 "대신 매매가는 집 상태와 대출 규모를 따져보고 계산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 지역과 도봉구, 강북구 일대에서는 오래된 다가구 주택 여러 채를 매입한 뒤 이를 허물고 짓는 신축 빌라 분양이 성행했다. '공급 과잉' 주의보가 제기됐을 정도다.전셋값 상승세와 맞물려 자금이 충분치 않은 신혼부부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많았다. 전세를 사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신축 빌라를 구매하겠다는 계산이었다.건축주와 중개업자는 앞다퉈 분양 경쟁을 하며 "입주금 3000만원만 있으면 신축 빌라를 매입할 수 있다"고 호객했다. 저금리에 이자 부담이 적은 만큼 입주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대출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제2금융권 대출까지 권했다.그랬던 부동산 업자들이 '집을 팔아준다'로 안면을 바꿨다.이는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와 맥을 같이 한다. 업계에 따르면, 잇따른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 매수세가 가라앉고 매매가 상승세 위축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2개월 전부터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여기에 내년에 주택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커지자 특히 대출을 많이 받은 주택 소유자가 집을 팔 것으로 예상, 발 빠르게 이런 영업을 하고 있다. 다른 부동산 중개업자는 "빌라 등 다세대주택은 아파트보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거래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는 매물"이라며 "저금리에 이자가 저렴하다고 대출을 많이 받았던 이들이 집값이 내려갈 것을 우려해 지금 파는 것이 나은지 문의하곤 한다"고 귀띔했다.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의 70~80%에 달하는 규모를 대출받았다면 집값이 조금이라도 조정되거나 금리가 인상되면 부담을 느낄 수 있다"며 "주택 매입에 앞서 상환할 수 있는 액수를 신중하게 따지는 등 무리한 대출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