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고급스럽고 세련된 트로트를 들어본 적이 얼마 만인가.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이생강(79)과 재즈 1세대인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70)이 8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여우락(樂)('여기, 우리 음악(樂)이 있다'의 줄임말) 페스티벌'의 오프닝 공연으로 선보인 '비긴 어게인'은 신세계였다. 이생강의 대금, 신관웅의 피아노가 큰 축을 이루고 장응규의 베이스, 신현필의 색소폰이 가세한 콰르텟(4중주)을 통해 들려준 '칠갑산'과 '타향살이'는 원류가 트로트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대금의 애절함이 트로트의 구슬픈 정서를 전달하며 트로트의 흔적을 선보였다. 김희현의 드럼까지 가세한 퀸텟(5중주)으로 들려준 '목포의 눈물'은 트로트, 재즈, 국악의 그 경계 어딘가에서 꿈틀대는, 생명력이 넘치는 곡으로 재탄생했다. 두 사람은 앞서 1998년 이생강의 '희망가'로 이미 협업했다. '목포의 눈물' '동백아가씨' 등 우리 대중가요를 재해석했다. 국악, 재즈, 트로트의 첫 만남으로 통했다. 이후 2006년 클럽 등에서 호흡을 맞추다가 이번에 다시 본격적으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신관웅은 "처음 이 선생님과 작업한 결과물에 대해 신성한 악기로 대중가요를 선보인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며 "하지만 개척자, 선구자 없이는 발전이 없다. 이번 이생강 선생님과 멋진 작업이 단순한 협업을 넘어 K-재즈가 나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감동은 트로트 것만이 아니었다. 이생강이 피리로 들려준 '데니보이'는 색소폰으로 듣는 동명의 곡보다 서정성이 짙고 애절했다. '서머 타임'에서도 피리는 재즈의 관악기와는 다른 질감을 선사했다. 이생강은 비교적 낯선 목관 악기인 퉁소를 소개하며 '퉁소 메나리조 시나위'를 들려줬는데, 대금과 피리와는 다른 울림을 전했다. 이생강, 신관웅 두 주연을 지원하는 조연들도 돋보였다. 특히 보컬 송길화의 판소리와 김희현의 화려한 드럼 소리가 만난 '드럼 & 판' 순서는 소리꾼이 고수만큼 드러머와도 잘 어울린다는 걸 보여줬다. KB하늘극장에 운집한 약 500명이 합창한 '옹헤야'에 이어 '즉흥 시나위 재즈'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시나위는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합주곡이다. 재즈 역시 즉흥연주인 '잼'에 특화됐다. 국악과 재즈에 기반을 둔 연주자들의 시나위 재즈는 당연히 곰살맞게 섞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생강의 대금과 신관웅의 피아노는 서로를 유려하면서도 변화무쌍하게 탐험했다. 점차 가슴을 뻐근하게 눌러오는 멋진 조합이었다. 한편 올해 7회째를 맞는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여름 우리음악 축제 '여우락'은 30일까지 국립극장 내 해오름극장, KB하늘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펼쳐진다. 이날 공연을 비롯해 총 4개의 테마 안에 11개 공연을 구성했다. 9~10일 배우 조재현·황석정이 출연하는 '달밤을 거닐다'가 바통을 이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