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의료계의 '네트워크 병원(복수의료기관)'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4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는 지난달 23일 네트워크 병원인 T병원 경기 안산지점 병원장 A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그동안 네트워크병원으로부터 환수한 839억원을 토해내야 할 위기에 처했다.T병원은 안산, 일산, 서울, 대전, 대구, 수원 등에 병원을 열고 그중 한곳인 안산지점에 명의상 개설자 겸 원장으로 A씨를 고용했다.건보공단은 병원측이 2개 이상의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개설해 의료법을 어겼다며 A씨가 원장으로 있는 안산지점에 대해 보험급여 지급을 보류하고 이미 지급한 약 74억원의 환수를 결정했다.A씨는 이에 불복해 취소소송을 냈고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이번 서울고법은 판단을 달리했다.법원은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중복으로 개설·운영했더라도 국민에게 정당한 급여가 돌아간 것으로 평가된다면 원칙적으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현행법상 불법의 소지가 있음에도 네트워크 병원이 건보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비용을 적법하게 청구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또 네트워크 병원에 대해 형사처벌 규정과 면허정지 규정 등이 있는데 보험급여비마저 지급하지 않는 것은 과잉 규제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재판부는 아울러 "사무장병원과 네트워크병원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사무장병원에 대해 개설자가 연대해 징수금을 납부토록 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병원은 명문화된 조항이 없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도 의료인이 복수의 병원을 개설하는 경우 불법성을 이른바 ‘사무장 병원’의 불법성과 달리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뒤집힌 판결…국회·건보 우려 표명=그동안 법원의 판단은 "네트워크 병원은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이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의료법을 위반해 적법하게 개설되지 않은 의료기관이 요양급여를 행했다면 해당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서울고법도 2014년 동일인의 동일 쟁점에서 "의료법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행위는 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된다"며 "지급된 요양급여는 부당이득 징수 사유에 해당되고 건보공단에서 아직 지급 되지 않은 비용을 거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선행된 형사2심 판결 역시 의료법 제33조 제8항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서울고법의 판단은 그동안의 결정과는 달랐다. 이에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의원은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다른 개설기준 위반 의료기관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의료인의 이중개설 금지 조항의 취지가 의료인의 복수 의료기관 운영으로 과잉진료(의료인 개인별 실적 관리로 인센티브 지급), 무리한 경쟁에 따른 리베이트 수수 등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건보공단도 현재 진행중인 다른 사무장병원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건보 측은 "서울고법은 형사처벌되지 않은 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환수대상이라고 판결했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은 형사처벌까지 받은 사안인데도 환수해서는 안된다는 엇갈린 판단을 한 것"이라고 반발했다.건보 측은 "사무장병원 유형은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고용하는 단순형태에서 영리추구형 사무장병원으로 나올 수 있다"며 "현재 음성적으로 진화하는 사무장병원 설립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건보공단이 복수의료기관 개설로 환수 결정한 839억원을 취소함으로서 건보 재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