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지난달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로 돈을 떼일 것을 우려한 세계 각국 항만이 입출항금지, 하역거부 등을 하면서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수많은 컨테이너가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다.한진해운에 제품 운반을 맡긴 삼성, LG 등 국내 기업 외 월마트, 아마존, 이케아 등 세계적 업체들은 물류대란에 따른 피해 책임을 물어올 것으로 보인다.법정관리에 돌입하고 있는 한진해운이 자금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운송차질에 따른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적극적 개입이 요구되는 정부나 한진그룹은 관망하는 자세만 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당분간 파장은 확산될 전망이다. 5일 한진해운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으로 컨테이너선 61척, 벌크선 7척 등 총 68척의 이 회사 선박이 19개국 44개 항만에서 비정상 운항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법정관리 신청 당일만 해도 22척이었던 비정상 운항 선박 숫자가 불과 사흘새 40여척 이상 크게 불었다. 이 회사는 현재 컨테이너 97척, 벌크선 44척 등 총 141척의 선박을 운영하고 있는데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운항에 차질을 겪고 있는 것이다.컨테이너 1척은 용선주 요청으로 싱가포르에 억류돼 있고 나머지는 세계 각국 항만과 하역업체들이 밀린 대금을 요청하면서 입출항 및 하역을 거부해 해상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경우다.그나마 하역이 완료된 경우라도 이를 운송할 2차 업체들이 임금체납을 이유로 한진해운 화물의 출하를 거부하고 있어 수많은 수출입 회사들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국내 기업들은 한진해운의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월마트, 아마존, 이케아 등 세계적 업체들의 경우 조만간 화물 지연에 대한 배상청구를 한진해운 측에 강력하게 걸어올 것으로 보이다. 특히 미국에 본적을 둔 회사들은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의 대목을 앞두고 한창 재고를 모으고 있던 터라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미국 소매판매 업계는 한진해운 사태가 미국 화주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면서 정부의 개입을 공식 요청했을 정도다.이같은 화물 표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진해운이 각종 밀린 대금을 하루빨리 지급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상태다. 한진해운의 체납금액은 지난 2일 기준 하역운반비 2200억원, 용선료 2400억원, 장비임차료 1000억원, 유류비 360억원 등 총 6100억원이다.일단 하역을 위해서라도 2200억원 정도의 현금이 있어야 하는데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진해운은 사실상 여력이 없다. 결국은 정부나 한진그룹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인데 양측 모두 사실상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정부는 한진그룹이 현 상황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금 지원 등을 검토한다는 태도다. 한진그룹은 아직 정부로부터 공식 요청을 받은 바 없어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정부는 어떻게든 지원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양호 회장이 사재를 내놓기를 바라는 모습이고 한진그룹은 채권단 뜻대로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으니 더는 애를 쓰기 싫다는 태도로 비친다.업계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미국 등 해외 정부 차원에서 국내 정부에 강력하게 클레임을 걸어올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국내 정부 및 기업에 대한 신인도는 크게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정부가 하루빨리 나서 지급보증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야 일단 화물 운송이 지연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한편 한국선주협회는 한진해운 사태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120만개의 컨테이너가 계획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정지하면서 물류대란 벌어지고 140억달러(약 15조6000억원)에 달하는 화물 지연에 대한 클레임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대 용선주 중 하나인 영국 조디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 한진해운을 상대로 용선료 미지급금에 대한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디악은 한진해운에 3600TEU급(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2척을 빌려주고 있다. 현재 연체된 용선료는 총 307만 달러(약 34억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