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계 등 일부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동조하면서 주장하는 바는, 지금 지방소멸 위기 단계에서 어떻게든 해봐야 되지 않는가? 궁여지책이라도 다른 방법이 없는데 이판사판 해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은 위정자들이 정치·행정의 기본 틀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절차를 무시한 행정통합 선언부터 하고, 이에 편승한 주장들이 대세를 이루어 나름대로 새 역사를 창조해 보자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안 돼도 본전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그래라도 해봐야 된다는 절박함은 이해할 수 있으나, 상대적 부작용 대책은 안중에도 없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한 발 더 나가 백지상태에서 행정구역을 재단하듯이 새로 그리자는 주장도 있다. 현행 시·군을 유지 할 생각은 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새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중복 기능 기관·조직의 통폐합까지 탁상공론의 끝장 공상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쯤 되면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라 전쟁이나 쿠데타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그나마 중립적으로 행정통합에 동조하되, 시·도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공론화 후에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청주처럼 주민투표로 동의를 얻고 비교적 성공한 지역과 창원처럼 주민투표도 없이 정치적으로 통합하여 지금까지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현실을 의식한 것이다.
이런 주장들을 보면서 실제로 국내외 사례들을 살펴보면 광역 행정과 기초 행정 개편에 대한 평가를 파악할 수 있다. 지금 광역 행정은 세계적으로 행정통합이나 경제연합으로 대도시화하면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기초행정은 국내외 공통으로 통합할수록 행정서비스가 불편해지고 지역 불균형과 행정비용 증가 역효과가 나타났다.
왜냐하면, 기초 자치단체를 통합하면 행정구역이 넓어지면서 자연적으로 주민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므로 그만큼 행정서비스가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근접지원이 멀어지면서 주민공동체도 느슨해지며 그로 인해 주민자치가 와해되어 자발적 참여행정이 사라지고, 모든 일을 공무원에게 의지하여 행정비용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통합할수록 대도시로 인구 유출은 물론, 통합지역 내에서도 좀 더 편리한 중심부로 모여서 지역 불균형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기초 자치단체 3,200여 개의 시정촌을 1,750여 개로 절반을 통합한 결과나 독일의 기초 자치단체 2만 4,000여 개를 8,000여 개로 1/3로 통합한 결과는 대부분이 불편, 불균형, 재정 등이 악화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961년 26개 시를 제외한 140개 면을 10여 개씩 묶어 14개 자치군으로 통합하고, 1995년 지방자치 때에 40여 개 도농복합도시 통합을 포함한 여수, 청주, 창원, 제주도까지 총 80여 개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을 통합하였으나, 그 결과는 외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불편, 불균형, 재정 등이 악화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초 자치단체인 시·군은 외국보다 인구가 10~50배나 많다. 외국의 경우는 스위스 4,000명, 독일 6,500명, 프랑스 8,000명, 일본 7만 명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20만 명이 넘는다.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규모는 적을수록 단합된 자생력이 강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기초자치단체는 읍·면·동이 적합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광역행정 메가시티 경쟁력과 기초행정 주민자치 자생력을 구분조차 못 하고 규모의 경제(행정) 논리에 함몰되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2단계 개편에서 충격적인 중앙집권식 부작용 함정이 검증되었다. 더 이상 행정통합은 안 된다. 기초단체는 주민자치로 자생력을 키우고, 광역자치단체는 경제연합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