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근 경주문화원장은 지난 23일 경주시청 브리핑 룸에서 청와대 뜰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24호·석불좌상(일명 미남석불 혹은 유덕사 석조여래좌상 혹은 이거사 석조여래좌상이라고도 함)은 제자리를 찾아 완벽히 복구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청와대 석불좌상 경주모시기 촉구결의문"을 낭독했다. 미남석불은 1912년 11월 8일 악명 높은 데라우치 조선총독이 경주를 방문했을 때 불법으로 반출돼 제자리를 벗어난 지 무려 105년이 흘렀고, 해방된 지도 72년이 됐으나 제대로 된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은 비운의 문화재의 상징이다. 이 석불은 조성경위와 출처가 분명한데다 미학적 가치가 높고, 일제강점기 초기 약탈에 따른 반출 경위도 드러난 만큼 언제라도 제자리 찾기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 석불을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원형을 완벽히 복구하고, 재평가를 거쳐 국보급 국가 지정을 받아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불법반출경위는 1910년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으로 데라우치 마다사케(寺內正毅)가 1912년11월7일 일본 가는 길에 경주를 방문해 석굴암 등 경주의 고적과 유물을 둘러볼 때,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고치라 조료(小平亮三) 집 정원에 옮겨다 놓은 이 불상을 보고 또 보았다고 한다. 고치라는 데라우치 총독이 이 불상을 마음에 둔 것을 눈치 채고 데라우치가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서울 남산 왜성대(倭城臺, 옛 안기부 자리)에 있던 총독관저로 불상을 옮겨 진상했다. 그 후 1927년 총독관저가 경복궁의 지금 청와대 자리에 신축되자 불상도 같이 옮겨졌다. 청와대에 옮겨진 석불은 1974년1월15일자로 고향 경주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 되었다. 1989년 대통령 관저가 신축되자 다시 100m 뒤쪽으로 물려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이 석불은 높이 110Cm로 석굴암 본존불을 3분의1 크기로 축소한 듯이 판박이로 닮아 있다. 8세기 중후반 통일신라 전성기에 만든 국보급 불상으로 ‘미남석불’이란 별칭까지 붙었다.김원장은 문화재는 원래 있었던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며. 최근 들어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반출 문화재를 되찾아 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반출 문화재에 대한 귀환 노력도 벌써 불이 붙었고. 경상남도와 익산시 등에서는 국립박물관이나 대학박물관, 발굴기관 등 타지의 기관에 소장된 문화재 찾아오기 운동을 펼쳐 오고 있으며. 경북도도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를 설립해 환수운동을 벌여오고 있다며. 경주는 과연 이대로 침묵할 것인가? 고향 경주를 떠난 대표적인 문화재, 청와대의 미남석불을 고향의 품으로 하루 빨리 모셔왔으면 한다. 우선은 경주박물관에 옮기고 이거사 터를 발굴하고 정비한 뒤, 원래 있던 제자리에 두는 것이 문화인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경주의 어떤 문화재가 반출되어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를 파악하여 하나하나 경주로 가져 오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일제 강점기인 1915년 9월, 경복궁에서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라는 박람회 전시용으로 옮겨간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제82호)’,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도 고향으로 돌아 와야 한다며. 타향에서 애타게 귀향을 꿈꾸고 있는 ‘황남대총 북분 금관(국보 제191호)’, ‘금령총 금관(보물 제338호)’을 비롯한 수많은 반출 문화재를 경주로 가져오는 범시민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경주=이상만 기자 man107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