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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체 불명의 공무원 노동자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4.04.22 07:36 수정 2024.04.22 10:33

전 안동시 풍천면장 김휘태


오는 5월 1일, 노동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공무원은 쉬지도 못하는 정체불명의 노동자다. 세계 80여개 국가에서 공휴일로 지정된 5월 1일 May-day가,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공휴일도 ‘노동절’도 아닌 ‘근로자의 날’이라고 희한하게 부르고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 헌법에는 근로자만 있지 노동자는 없는 충격적인 사실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노동자란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 고용주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력과 임금을 주고받는 수평적 관계고, 근로자란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 고용주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노동절’로 주체적으로 쉴 수 있지만 ‘근로자의 날’로 종속적으로 쉬지도 못하는 것이다.

법적으로도 노동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광범위하게 일하는 대가로 사는 사람들이지만, 근로자는 사업장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므로,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 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책임 있는 고용주의 지도·감독 아래서 기본급을 정하여 일하는 경우에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늘어나고 있는 택배나 화물차 기사, 정신노동자, 비정규직 등 오히려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한 특수형태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공익과 국부를 생산하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도 아니다.

매년 5윌 1일 May-Day 라는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 명 노동자들이 총파업 하여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한 기념일이다. 그로부터 84년이나 지난 1970년 1월 13일 대한민국 청계천에서, 전태일 열사가 1일 8시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분신까지 하고도 5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노동자란 이름조차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제 강점기에도 있던 ‘노동절’을 1963년 3공화국 시절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근로자의 날’로 바꿨다고 한다. 1989년 May-day100주년에 노동계에서 ‘노동절’로 선언했지만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아직도 ‘근로자의 날’일뿐이다. 어찌하여 노동부는 있는데 노동자가 없고, 노동조합도 있는데 노동자는 없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사회가 이런 수준이다 보니 민주주의 제도인 노동 3권도 보장되지 않고, 사회적약자의 정당한 권리주장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불법적이라고 몰아붙이는 한심한 나라가 된 것이다. 강대국의 힘에 편승한 사대주의와 국가권력에 유착한 황금만능 권위주의에 빠지면서 민족의 얼과 국가의 정의가 흐트러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노동자’의 정의부터 확립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과거의 낡은 관념들을 하루빨리 타파해야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첫 단추인 이름부터 잘못되면 본말이 전도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금부터라도 ‘노동자’와 ‘노동절’로 재정립해야 자유민주국가의 정체성과 사회정의가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21C 4차 산업혁명시대에 호주나 칠레 등 세계적으로 주 4일 40시간제로 전환하고 있는 지금 시대착오적인 주 69시간 이야기는 더 이상 난센스다. 주 4일 40시간제로 고용을 늘리고 노동시간은 줄여야(일자리 나누기) AI로봇 시대에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이름부터 잘못된 본말전도가 여실히 나타난 것이다.

또한 MZ세대가 줄줄이 떠나고 있는 이유도 정체불명의 공무원 노동자로 주체적으로 낡은 계급제와 10년 넘게 최하위 8~9급 저임금을 타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엽관제부터 정치·행정 이원화와 직업공무원(계급)제를 거쳐 이제는 직위분류(수평조직)제와 같은 전문직 공무원제로 변화해야 행정 능률을 높이고 국가와 공무원의 발전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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