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이승을 하직하는 것이 보통의 사례다. 이보단 살아있을 때가 더 문제다. 누구든 아프면, 병원서 치료받는다. 이때에 보다 가까운 곳에 의료기관이 있다면, 완치나 생존율이 높다. 문제는 이웃에 치료기관이 없거나, 있다 해도 치료할 수가 있는 전문의가 없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때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
2023년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역별 의료이용통계연보(2018∼2022)’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평균 의사 수는 5년 전보다 0.17명 늘어난 2.12명(한의사 제외)이었다. 지난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 3.35명으로 가장 많았다.
OECD의 ‘2023년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문의 중 병·의원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 봉직의의 연간 임금소득은 19만 2749달러(2020년 기준)이었다. 관련 통계를 제출한 OECD 회원국 28개국 중 가장 많았다. ‘의사면허증이 돈벌이 도구’로 추락하는 대목이다. 국토연구원의 ‘도시 내 고가주택 군집지역과 저가주택 군집지역 간 거주환경 격차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 1만 명당 병의원 수를 따져보니 고가주택 군집지는 25.5개, 저가주택 군집지는 14.9개로, 고가주택 지역이 70% 많았다.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 역시 고가주택 군집지는 50.9명, 저가주택 군집지는 22.2명으로 2배 넘게 차이가 났다. 여기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를 묻는다면, 돈을 벌기 위해서다. 어느 지자체든 돈이 없으면, 의사도 비례적으로 없거나 적다.
지난 8일 포항시에 따르면, 지방 의료 붕괴를 막고 심각한 지역의료 불균형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진행한 ‘포스텍 의과대학 신설 서명 운동’이 목표치를 훨씬 초과했다. 포항시가 지난해 11월 27일에 열린 포스텍 의과대학 신설 범시민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31일까지 진행한 서명 운동에 30만 5,803명이 동참했다. 당초 목표인 20만 명을 153% 초과 달성했다. 이번 서명운동은 추운 날씨에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10만 명을 돌파했다. 보름 만에 기존 목표치였던 20만 명을 조기 달성했다.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지역민의 뜨거운 열망과 간절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항시는 서명운동 기간 동안 지자체와 공공기관, 학교 및 지역 사회단체, 지역기업, 농업·수산업 및 문화·예술 단체 등 시민사회와 협조체계를 구축했다. 스페이스워크, 영일대해수욕장, 죽도시장 등 주요 거점 지역뿐 아니다. KTX 역사와 시외버스 터미널에도 서명부스를 설치해, 포스텍 의대 신설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서명운동 동참을 호소했다.
각종 연말 행사에서도 결의 퍼포먼스와 함께 서명운동 동참을 이어갔다. 재경·재대구 등 포항향우회서 경주·울진·영덕·울릉 등 도내 시·군에서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모든 지역민이 뜻을 함께했다.
포항시는 이번 서명운동이 ‘포스텍 의과대학 신설’의 중요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방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지역민들의 간절한 염원의 목소리를 담아 적절한 시점에 대통령실,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에 전달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모든 국민이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30만 명 이상 모인 시민의 간절함을 정부에 전달해 포스텍 의대를 반드시 신설한다. 지역의료 붕괴를 막는 길은 포항시에 의과대학의 설립이다. 이렇다면, 왜 하필이면, 공과대학인 포스텍인가를 물어야 한다. 포스텍은 현재 공과대학으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공과대학만으로도 필요성·충분성을 다 갖추었다.
이 같은 의미서 포항시 의료는 포스텍이 아니라도 좋다는 것이다. 포항시와 인근의 지자체가 힘을 모아,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정부를 설득하는데 더욱 효과적이 아닌가 한다. 이에 앞서, 의사면허증을 쥐는 순간에 부자 동네로, 수도권으로의 쏠림 현상의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