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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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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이웃에 간판은 없으나 탐스런 제철 과일이랑 올망졸망 작은 화분들을 함께 파는 가게가 있다. 동네에선 ‘할머니네’로 그냥 정겹게 부른다. 할머니네서 연보라 나비들이 앉은 듯한, ‘랜디 제라늄’을 샀다.
호기롭게 잘 키워서, 이웃들과 나눠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아차, 하는 사이 처음에 예쁘게 피던 꽃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파란 잎만 남아, 나는 1층에서 2층으로 햇볕 잘 받는 명당을 찾아주기에 분주했다.
다행히 물도 좋아하고, 햇볕도 좋아했다. 초보인 내가 화초를 잘 가꾸는 사람이라고 착각 할 만큼이나 그랬다. 지난 여름엔 푸르게 푸르게 예쁘게 예쁘게, 두 번째 꽃을 보여 줬다.
날마다 푸르러 날마다 예쁜 꽃을 보여 주리란 생각했다. 식물의 영양기관인 가지나 잎을 잘라낸 후, 다시 심어서 식물을 얻어내는 재배방식인 꺾꽂이(揷木)를 해서, 여기저기 나눔도 했다. 그렇게 늘 예쁘게 나의 자랑이 되어 주리라 믿었는데, 늦은 가을 이유 없이, 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꽃을 보여주려고 준비하려나, 한껏 설레고 있을 때, 잎의 색깔이 갈변(褐變)이 되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여름에 잎이 한참일 때, 가지 정리를 하며, 물에서 어느 정도 뿌리가 날 때 까지 기다리는 물꽂이를 했다. 이렇게 물꽂이하고, 꺾꽂이해둔 아이들은 열심히 뿌리내리기를 하고 있는데, 어미나무(母株)는 가지를 나눠주고 앙상한 채로 남았다.
잠시 쉬어가나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꽃핌의 쉼이 너무 길었다. 여름동안 말없는 식물이라고 내가 너무 힘들게 한 건지? 잎으로도 꽃의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앙상한 가지로 나를 쳐다본다.
내 시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늘 나를 바라만 봤다. 볕 잘 드는 곳에 두고, 물 주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말을 걸어보지만, 대답이 없다. 살아가고 있는 건지, 죽어가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아침 물을 주다가 문득 생각해본다.
나의 미련 때문에 더 힘든 건 아닐까? 꾸역꾸역 물을 삼키다가, 가쁜 숨을 쉬고 있는건 아닌지? 내가 미련하게 추억에 젖어, 지금 몸부림치는 아픔을 내가 몰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꽃나무가 온몸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서부터 잘 못 됐을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을 때부터는 물을 조금씩 줄여서 줘야했다. 풍성한 수형을 만들려는 욕심에 새순이 나오는 가장 어린 새순을 제거하는 ‘순 집기’를 많이 하지 말아야 했다. 꽃이 지고 나면, 영양 비료나 병충해를 예방하는 비료를 줬어야 했다. 좀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 뿌리가 더 튼실하게 내릴 수 있게 해주어야 했다.’
미련은 후회를 낳는다더니, 뒤늦은 후회가 나를 그 곳에서 꼼짝도 못하게 붙잡는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발목이 잡혀,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 둘 찾아지면, 미안해진다. 많이 미안해진다.
화분을 뒤집어 뿌리를 확인해 보면, 금방 알건데.... 마주해야 하는 사실이 두려워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고, 잠든 것처럼 고요히 멈추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나를 만나고 나서, 처음 맞는 겨울이 앙상하다. 앙상한 가지를 만져본다.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원래 겨울은 이렇게 보내는 것처럼, 겉흙이 마르면 물을 주고. 비료도 한주먹 뿌려주며, 거리에 앙상한 나무들에 위안을 받으며 기다리고 있다.
잘 쉬고 잘 견뎌, 더 예쁘지 않아도 되니, ‘오는 봄날을 함께’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