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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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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출퇴근길은 차가 막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항상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궂은 날씨를 제외하고는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지인과의 짧은 소통은 덤으로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지나다니다 보면 어떤 가게는 무언가 어색하게 느낄 때가 있는데, 그건 간판이나 창에 새겨넣은 글자가 처음과는 달리 떨어져 나갔거나 비스듬한 경우 때문이다.
이렇게 비뚤어진 간판을 보면 문득, 고속버스 좌석 등받이 문제로 화제가 되었던 기삿거리가 생각났다. 어느 고속버스에서 좌석을 최대한 눕힌 젊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간 것이었는데, 제목이 ‘고속버스 민폐녀’다. 이 영상에서는 20대로 보이는 여성 승객이 고속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자신의 등받이를 뒤로 끝까지 눕히고 있는데, 바로 뒷자리의 남성은 다리를 뻗을 공간이 없어 통로 쪽으로 다리를 빼고 앉으면서, 불편을 호소한다. 이에 앞자리의 여성은 “뭐가 문제냐”고 따졌다. 그녀의 말에는 아마 등받이 좌석이 눕혀질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그만큼 눕혀도 된다는 암묵적 허용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각도’다. 앞의 사례에서, 간판도 비스듬하게 달려 처음 제작했을 때와 ‘각도’가 많이 달라지면 보는 이의 마음이 꺼림칙하다. 뒤의 사례에서는 좌석 등받이를 얼마만큼 눕혀도 뒤의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자신에게 편할 수 있느냐 하는 측면에서 눕히는 ‘각도’가 문제가 된다.
‘각도’가 처음 의도와 다른 것을 ‘삐딱하다’고 우리는 표현한다. 그러니까 간판이나 글자가 삐딱하게 걸렸거나 좌석 등받이가 너무 삐딱하면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즉, 각도가 알맞지 않으면 불편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삐딱하다’를 찾아보니, ‘비딱하다’보다 센 느낌을 주는 단어라고 하면서, “마음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바르지 못하고 조금 비뚤어져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쨌든 각도가 알맞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화제의 여성 승객은, “애초에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어쩌라고”라며 주변의 불만에 짜증을 냈다고 하는데, 이를 문제 삼으려면 아예 처음 만들 때부터 뒷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좌석의 등받이를 눕힐 수 있는 각도를 정해놓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 모양이다. 이 사례를 보면서 필자도 등받이 각도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그 범위에서 사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큼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문득 스쳤다.
그러나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졌어도,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젖히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이 사연에서 소위 ‘민폐 승객’의 예의 없는 이기적 행동은 틀림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고속버스, 기차, 비행기 등 장거리 이동 수단에서 좌석의 등받이와 관련된 언쟁은 계속하여 이어져 온 사실임을 비춰보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등받이를 최대한 젖혀도 되는 것이, 그 좌석의 승객이 갖는 하나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뒷사람의 불편함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상반된 것이기 때문이다.
전세를 살다가 새집을 장만하여, 아파트로 이사를 간 사람이, 자기의 집이니까 이제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래층에 사는 사람의 불편함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층간 소음 문제는 뻔하다. 자기 집이라 당연히 소유권은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그 소유권 속에 자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권리까지 들어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치를 생각해 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좌석 등받이를 어느 정도까지 젖혀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는 법은 없을 것이다. 고속버스를 제조하는 회사의 좌석 사이의 거리와 등받이의 각도는, ‘자동차 및 자동자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른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앞좌석 등받이 뒷면과 뒷좌석 등받이 앞면 사이의 거리가 몇 ㎝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그 밖에 좌석의 등받이 각도에 관해서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뒷좌석의 승객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그 각도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지만, 뒷사람이 불편하다고 한다면 작은 각도라도 그 사람과의 사전 소통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앞좌석의 여성이 뒷사람에게 몸이 좀 아파 좌석 등받이를 조금 많이 눕히겠다는 식의 양해를 구했다면 뒷좌석의 승객은 이해하고 배려해 줬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무언의 양해를 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도 앞으로는 다른 사람과 더욱 소통하고, 내가 모르는 그들의 불편함은 없는지 생각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