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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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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우린 가족회의를 종종 한다. 회의는 가족공동체의 그 어떤 것을 말하고 싶거나, 그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때이다. 가족회의의 순기능은 대화부족으로 생길 수 있는 어떤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을 해결해 준다.
‘아이들은 다투면서 자란다’는 말이 있지만, 너무 잦은 다툼이 있거나, 정리정돈이 안 되거나, 예의·범절에 어긋나거나, 엄마 아빠와 조율이 안 될 때, 엄마의 사과를 받고 싶거나, 아빠의 뜬금없는 고함이 있을 때, 아빠의 주도하에 가족회의를 한다.
이렇게 회의를 하는 날엔, 자기 의도와 달리 해석되는 것들에 아직 서로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생각에서 연유’함을 아이들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섭섭함과 억울함으로 눈물 바다가 되기도 한다. 답답함에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하지만 중도에 파행이 된 적은 없었다.
각자의 안건을 적어 하나씩 짚어가며, 개선이 필요한가를 동의를 구한다. 어떻게 개선을 할 건지를 정한다. 지켜지지 않을 땐, 어떻게 대처할 것까지 정하면, 회의가 끝이 난다. 각자 동의의 표시로 사인하고, 회의록을 파일에 모은다. 두꺼워진 회의록 파일을 보면, 반복적으로 탁상에 오른 안건도 있다. 동의를 구하고 사인했으나, 그 동안에 개선이 쉽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래도 우리 가족들은 이런 시간들로 가르치고, 배우고, 즐기고 있다. 지금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과의 가족회의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각자의 ‘생각 주머니’가 커졌다. 옳고 그름이 조금씩 정착된다는 증거로 본다. 가족회의가 아주 어릴 땐, 가르침의 영역이었다면, 이젠 각자의 다른 생각을 조율하는 영역이 많아서, 아주 흐뭇하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거다.
내가 요즘 회의 중 아이들로부터 “엄마는 왜 우리말을 중간에 자꾸 끊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한 부분이다. 나는 대화 중 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자기의 말이 차단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아이들을 배려하지 못한 나의 실수다.
그래서 요즘은 듣는 연습을 한다. ‘가장 말 잘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말을 가장 잘 듣는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에게서 다시 배운다. 내가 어릴 땐 어른들 말씀에 내 의견이라도 말하려면, 버릇없는 말대꾸로 취급했다. 그땐 참 많이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말하고 듣고 상호간의 이해와 소통하는 것은 잘 들어 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요즘은 말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자기표현이 명확하고 또렷하다. 반대로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들어주는 이들이 줄어든 듯하다.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없이는 생활을 영위해 갈 수 없다.
우리 가족회의는 생각이 다른 이들이 모인, ‘작은 공동체’다. 이 작은 공동체가 ‘한국의 민주주의 큰 공동체’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작은 욕심만이 아닐 것이다. 가족회의를 통해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타인의 생각을 듣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조율하고 개선하며 소중한 관계 속에서 성숙한 사회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