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여운이 1968년에 불렀던 ‘과거는 흘러갔다’는 대구에서 고교시절 짝사랑을 그리는 노래였다고 한다. 야구선수였지만 음악이 좋아 감상실에 자주 갔고, 앞에 앉은 여대생을 짝사랑하다가 상경하여 가수가 되었다는 사연이다. 필자는 오늘 문득 그때 여운의 마음처럼 ‘빗물은 흘러갔다’는 자연사랑에 사로잡혀 애타게 불러본다.
‘즐거웠던 그 날이(떠나버린 빗물이)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강산에 머무르던)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붙잡을)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빗물은) 흘러갔다.’ 짝사랑하던 여대생을 붙잡지 못하고 애타게 그리워하듯, 농공 생명수 장맛비를 붙잡지 못하고 애타게 그리워하는 동병상련이랄까 미련이 가시지 않아서이다.
사랑과 빗물을 은유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인식을 되새겨보자는 뜻이다. 이번 장맛비는 20일 동안 연 평균 강수량의 절반을 넘는 640mm 물 폭탄이 쏟아져서 전국이 초토화되고 50명이나 인명피해를 당하는 국가적 대재앙을 겪었기 때문에, 평소에 저류시설을 준비해서 붙잡아두지 못한 후회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후변화가 오기 전에 우리나라 연 평균 강수량은 1270mm로서 국토(남한)면적 10만㎢×1.27m=1270억㎥(톤)이나 되지만, 500mm는 공중증발과 지하에 스며들고 370mm만 농공생수로 사용되며 1/3이나 되는 400mm는 그냥 바다로 휩쓸려 가버린다. 그래서 여름에는 홍수로, 봄·가을·겨울에는 가뭄과 산불로 해마다 난리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50년 만의 가뭄으로 식수마저 말라버렸던 호남지역은 이번 물 폭탄으로 홍수가 전역을 휩쓸었다. 전국의 도시는 침수되고 하천은 범람하여 광활한 곡창지대가 황해로 변해버렸다. 장맛비 20일간 청양은 천년빈도로 900mm가 넘게 쏟아져서 물 천하가 되었고, 경북은 산사태로, 괴산은 댐까지 넘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이제는 재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청양의 천 년 빈도가 눈앞에 나타났고 괴산의 댐이 넘쳤으며 전국의 산과 하천제방이 무너져 내렸다. 노아의 방주처럼 이러한 세상을 심판하려는 대홍수를 막아낼 방도를 찾아야 한다. 200년 빈도의 과거는 흘러갔다. 1000년도 깨졌다. 반영구적이고 과학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재난 메뉴얼을 갖추어야 한다.
엘리뇨와 라니뇨, 지구온난화는 열대화로, 집중호우는 극한호우로, 태풍과 토네이도와 모래·황사태풍으로, 지진과 화산으로, 방사선·중금속·화학물질·미세먼지(매연)·독성조류 등으로 인한 대기·수질오염으로, 복잡한 산업·교통·화재·소음·진동으로, 전쟁과 우주·경제난·사회적 갈등으로 우리는 심각한 재난에 직면해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터지는 재난은 천재도 있지만 날이 갈수록 우리 스스로가 저지르는 인재가 늘어난다는데 중대한 문제가 있다. 최근에 일어난 지하침수사고나 산업건설현장의 화재·붕괴·추락사고 등 뻔히 알고도 안전 지침을 이행하지 않는 고질적 병폐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과 대책을, 새로운 재난 안전패러다임으로 통째로 바꿔야 한다.
특히, 이번 참사처럼 사람이 연락·통제·작동하는 원시적인 시스템은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자동화시스템으로 구축하고 사람이 이중삼중으로 확인하는 재난 안전메뉴얼을 시급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하에 물이 차면 센서로 경보가 울리며 즉시 자동차단·대피시키고 유관기관 실무자에게 동시에 전파하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과거는 흘러가도 사랑과 아픔이 남듯이 빗물은 흘러가도 재난과 고통이 남아있다. 과거는 흘러가도 미래에 다시 오듯이 빗물은 흘러가도 강산에 다시 온다. 다시 오는 미래는 그렇게 허무하게 흘려보내지 말아야 하듯이 다시 오는 빗물은 홍수로 폭망하게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대자연의 빗물은 알고 있다. 산과 들에서 유유히 머물러 쉬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