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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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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들은 상사의 업무지시에 대해 ‘제가요?’, ‘지금요?’, ‘왜요?’하고 되묻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자신의 업무 영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가능한 한 회피하려는 경향이 팽배하다 보니 책임질 일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반영한 질문으로 풀이된다. 요즘 대학에서의 분위기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 보니 강의내용 외는 학생들에게 말 걸기가 쉽지 않고, 학생들 또한 성적평가에 반영되는 일 외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어떤 경제인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인재를 키워내는 방법의 하나로 그런 질문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도덕성을 갖추는 일보다는 요즘의 교육은 그야말로 취업만을 위한 교육, 연봉이 높은 곳에 취업하는 것이 곧 최고의 성공이라는 가치관 속에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게 한다.
그래서 자율적 판단을 통한 이성적 행동이 칭찬받기보다, 내 업무가 아닌 일을 왜 내게 시키느냐고 공공연히 항의하는 일이, 용감하고 정의롭게까지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보다는 칼로 잘라놓은 잘 구분된 업무분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챗GPT가 등장한 이후로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업무만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사이에 우러나는 정감은 아예 없애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 대학에서 시험을 칠 때, 챗GPT로 기술한 것을 진짜 학생이 쓴 것과 구별하기 어렵게 되자, 교수들이 ‘기말고사에 챗GPT를 쓰면 0점’이라고 공지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지나치게 냉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들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가요?’, ‘지금요?’, ‘왜요?’하고 나중에 되물어 왔을 때 참으로 난감할 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번져나갈 것이 확실하므로 사람끼리 업무 외 정담을 나누는 것도 점점 드물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어떤 지식만을 논리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게만 전달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에서, 사람끼리 정을 담은 대화를 나누는 것의 가치를 찾는 게 점점 시대에 뒤처지거나 어색하게까지 느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기말고사 철이다. 답안지에 그동안 강의에 감사한다는 메모를 보면서 절로 보람을 가졌던 기억을 요즘은 맛보기 어렵다. 오직 ‘예스 아니면 노’라는 논리에 사로잡힌 명확성, 어떻게 하면 A 학점을 받을까 하는 요령에만 집착하는 세태가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정이 담긴 대화가 아니라 오직 사무적이고, 객관식이 된 말의 주고받음이 생활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있다. 어떤 인터넷 작업에서는 그 사용자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하게 하는 단계를 중간에 끼워 넣어, 사람이면 다음 단계의 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아무리 중요한 사람의 일이라도 기계의 작동원리를 거슬러서는 안 되도록 하고 있으니, 기계의 지시를 재빨리 충실히 따라야 하므로 사람의 말수는 저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니 정감 어린 말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직원보다, 따뜻한 마음은 전혀 없다 하더라도 컴퓨터만을 잘 다루는 직원이 더 우수한 능력을 가졌다는 평점을 받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업무를 빨리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할까? 따뜻한 마음으로 동료와 함께 정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까? 둘 다 중요하겠지만 후자가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라 할 때, 행복의 가치를 일로 보기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제가요?’, ‘지금요?’, ‘왜요?’가 결코 똑똑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