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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희 휴피부관리실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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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또 이렇게 보냈어?
허리도 아프면서 이런 걸 왜 해!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
파김치 무김치를 택배로 받아들고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압박골절로 입원했다 퇴원한지 몇 달 되지 않은 뒤라 염려 반 걱정 반으로...
이웃에서 총각무랑 파를 많이 줘서 담아 봤다는데도 나의 대답은 매서웠다.
"그래..."
체념한 듯 힘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으셨고, 난 전화를 끊고도 엄마의 무모함에 한참을 혼잣말로 쏟아 붓고 냉장고에 김치를 챙겨 넣으며 밀려오는 후회...
"엄마, 김치 맛있네ᆢ"
"그래 맛있더나 다행이네. ...그냥 두면 버릴 것 같아 버리면 아깝잖아 그래서 해봤다"
"맛있게 잘 먹을게...“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이제 더 이상 영양에서 택배는 오지 않는다.
해마다 봄이면 화단 한 켠에 한 그루 있는 두릅나무에서 하나하나 꺾어 모아 자식들 나눠먹으라고 보내주시던 두릅도...
경북 영해 해풍맞은 쌀이 맛나다고 보내주시던 쌀이며 찹쌀현미도,
비트 물 곱게 우러난 물김치도,
가을볕에 말린 무와 고추잎 들어간 무우말랭이 김치도,
빛깔 좋은 영양고추에 직접 달인 조청 넣어 만든 고추장도,
작은 텃밭에서 키운 들깨로 내린 고소한 들기름도,
제피 향 진한 김장 김치도...
마지막엔 정 때려고 서로 쏟아낸다는데
그러지 말걸 그랬다.
투정을 좀 받아 드릴걸 그랬다
잊혀지는 이도 잊는 이도 그게 누구든 쉽지가 않다.
가슴에 큰 대못 박고 보내 드린 것 같아 너무 죄송스럽다.
그토록 맘 넓게 받아드리고 있었는데
누구보다도 엄마의 비빌 언덕이 되어드리고 싶었는데
긴 세월 가슴에 돌덩이처럼 얹고 살다.
이제 딸도 엄마가 된지 20여년이 됐으니 내편 들어주겠거니 털어 놓았을 텐데
왜 그리도 매정하고 매몰찼던지 그냥 들어만 주어도 좋았을 텐데
엄마는 그걸 바랐을 텐데
고지식한 딸은 그렇게 마지막 정을 끊어 내고 있었던 건지...
엄마도 여자였는데
대단한 양반집 8남매 맏며느리로 그리 좋아하시는 매니큐어
한번 기분 좋게 발라보지 못하고
장성한 도련님 시누들 시집장가 걱정에 올망졸망 5남매는 뒷전이 되고
맏이 무게로 늘 자유롭지 못한 신랑은 늘 내 편이 안되어 주고
어렵게 키워놓은 자식도 내 맘 알아주는 이 없었으니...
엄마 아니고 여자로 이해해보려고 했더라면
가시고 안 계신 이 시간이 이렇게 후회되고 힘들진 않을 텐데
너무 대단하다고 너무 고맙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말도 못했는데...
폭폭 삶아 가지런히 올려놓은 수건도
울산으로 청도로 대구로 보내려 담아 둔 고추장도
지난 가을 사드린 새 신발도 그대로 인데...
어디쯤 가시고 계신가요?
벚꽃 날리는 꽃길은 만났는지...
꽃비 맞으며 노래 한 곡 뽑으시는지...
환하게 웃고 있는지...
해마다 맛 봐주던 두릅은
마당 화단에 손길 기다리며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