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오면 개성에 가지 않고도 송악산을 구경할 수 있고, 서울에 가지 않고도 경복궁을 구경 할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촬영장 뒤에 서기가 서린 조령산의 봉우리들이 개성에 있는 고려궁궐 만월대를 품고 있는 송악산을 닮았다고 하고 궁궐로 들어서면 광화문, 근정문,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서울에 있는 경복궁을 그대로 옮긴 듯 웅장한 전각들이 즐비하다.
자∼ 그럼,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 궁궐로 떠나볼까요.
◇ ‘강녕전’에서 궁녀 이야기
이곳은 왕의 침전입니다.
조선의 궁궐에는 궁녀가 500여 명 있었습니다. 궁녀가 되려면 첫째 조건이 숫처녀라야 되는데 10세 정도의 ‘생각시’가 선발되면 숫처녀 감별을 받습니다.
“혹시 옛날 숫처녀 검사법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
“앵무새의 뜨거운 피 한 방울을 팔뚝에 떨어트려 이슬처럼 맺혀지면 숫처녀, 주르르 미끄러져 내리면 숫처녀가 아님, 너는 집에 가!” 하였답니다.
판별법이 비과학적이고 황당하지만, 그때는 그랬답니다.
이렇게 첫 관문을 통과하면 다음은 환관이 횃불로 입을 지지는 흉내를 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의식으로 궁궐 내에서 입조심, 말조심하라는 것과 궁궐 밖에서 가져온 나쁜 기운과 사악한 모든 것들을 태워 없애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한 후 본격적인 궁녀수업을 받는데 한글, 소학, 궁중 법도, 삼강행실도 등을 배우게 되며 교육 중에 실수로 방귀를 뀌면 부모에게 알려 벌칙으로 음식을 해와 상전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의 여인이 되기 위해 특별한 훈련도 받았는데 오늘 오신 분들은 모두 성인이기 몇 가지 소개하면, 걸을 때 발뒤꿈치를 들고 다니기, 앉은 자세로 방바닥에 걸레질하기, 연시 혀로 껍질 벗기기, 무릎으로 팥알 집어 올리기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상한 걸 다 가르치지요. 이유는 묻지 말고 각자 짐작하세요.
강녕전에는 매일 8명의 지밀나인이 왕의 침실을 지키며 시중을 드는데 국가공무원 대우에 3교대제로 12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체제로 근무조건이 상당이 좋을 뿐 아니라 왕을 지근에서 모시게 되니 성은을 입어 팔자를 고칠 기회도 있는 측근 궁녀들입니다. 그래서 사고 방지를 위해 못난이나 나이 지긋한 궁녀를 두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왕이 길한 날을 받아 여인을 품을 때 옆방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시면 “상감마마! 인제 그만 옥체를 보전하소서”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 조선시대 왕의 스태미나 음식
이렇게 여인들 속에 묻혀 지내는 조선시대의 왕들이 즐겨 드셨던 정력 음식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몇 가지 소개해 볼까요.
첫째, 민물 뱀장어에 마늘을 넣고 고아 먹으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고 하고요.
둘째, 돼지 코나 귀로 만든 수프를 먹었는데 아마도 요즘 돼지 껍질에 많다는 콜라젠이 몸에 좋다고 하듯이 그때 이미 효능을 알았든 모양입니다.
셋째, 개미를 볶아 먹었는데 아연 성분이 정력에 좋다는 것을 현대의학에서도 인정하는데 아연이 많이 들어있고 또 개미는 자기 몸무게보다 400배의 무거운 물체를 끌고 다니는 힘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정력 음식 중의 으뜸은 ‘참새죽’인데 뼈를 발라낸 참새 3마리에 생강 조금과 찹쌀 반 종발을 넣고 끓인 것입니다. 이 죽을 드신 날 밤, 왕을 모신 궁녀는 혼절하거나 며칠간은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내일부터 참새 잡으러 가지 마세요. 하하”
◇ 조선시대 신데렐라 최무수리
무수리는 궁중에서 청소 등 막일을 하는 여종인데 원래 몽골어로 ‘소녀’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맞벌이의 원조가 무수리라고 하는데 무수리는 유부녀라도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MBC 사극드라마 ‘동이’는 조선시대의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는 최무수리 이야기를 드라마 한 것이며 천민 출신 ‘숙빈 최씨’의 어린 시절 이름입니다.
궁궐 안 깊은 밤, 남몰래 최무수리는 전에 모셨던 폐비 인현왕후의 생일을 맞아 조촐한 생일상을 준비했습니다. 장희빈의 모함에 빠져 궁을 떠난 인현왕후의 인자했던 모습을 그리면서 생일상 앞에 앉아 흐느껴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숙종이 산책을 하다가, 이 밤중에, 궁궐에서 웬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어인 일인가? 기이하게 여기면서 그를 찾아 그 연유가 무엇이냐 물으니 최무수리는 죄인 폐비를 위해 생일상을 차리고 울고 있었으니 이제 죽은 목숨이구나 생각하였으나 거짓을 아뢸 수 없어 사실대로 여쭈니
숙종은 정겹고 품위 있는 인현왕후가 불현듯 떠올랐고 장희빈에게 현혹되어 인현왕후를 폐비시킨 잘못을 느껴서인지 의외로 “기특하구나” 하며 촛불에 비친 아름다운 여인 최무수리에게 “고운 마음을 가졌구나! 내 오늘 밤 너와 함께 술을 한 잔 마시고 싶구나” 하며 상상도 할 수 없었든 왕과의 하룻밤을 보내는 성은을 입게 되고 숙종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후에 영조가 될 연잉군을 낳고 내명부의 가장 높은 정1품 빈(嬪)에까지 이르렀는데 그가 바로 ‘숙빈 최씨’,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肅宗)의 후궁이자 21대 임금 영조(英祖)의 생모인 것입니다.
◇ 왕후의 침전 교태전에서
“여기 아름다운 여성분들 많으신데 혹시 전생에 교태전 주인 없나요?”
그러나 전생에 교태전 주인이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안타까워 마세요. 결코, 여성으로서 최고의 지위인 만백성의 어머니, 국모라 하지만, 교태전 주인이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왕세종’ 드라마 나오는 것을 보면 세종의 어머니(태종의 비) 원경왕후는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왕비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쟁에 휘말려 친정아버지가 죽고 남동생 민무질, 민무구 역시 사사(賜死) 당하는 것을 보고도 막지 못한 불운을 겪었고, 자식들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첫째인 양녕이 왕세자 자리에 있었으나 셋째인 충령이 왕이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고생을 하고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100개도 더 박은 아픔으로 생을 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 역시 친정아버지 영의정 심온이 정쟁에 휘말려 죽는 것을 막지 못했고 본인도 그때 폐비 직전까지 갔었던 고충을 당했습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은 비록 큰 부자가 되지 못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예쁜 아들 딸 낳아 가족이 오손도손 살고 있고, 주말이면 이렇게 문화관광 도시 문경을 찾아 여행도 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왕비가 되어 감옥과도 같은 이 좁은 공간인 교태전에서 기거하고 기껏해야 아미산 후원에서나 거니는 왕비보다 지금 몇 배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박수-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