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수도인 경주시는 ‘지붕이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이 같은 것에 또 다시, ‘지하박물관’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이는 천마총(天馬冢)에 원인한다. 신라 천마총 제155호 고분이었다. 1973년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 됐다.
무덤의 축조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한다. 석단 내부에 널을 동서방향으로 안치했다. 천마총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제155호 고분이라고 불려왔으나, 1973년 문화재관리국이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채색으로 천마(天馬)를 그린 말다래(障泥;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고 명명됐다.
지금부터 반 백년 전인 1973년 당시 발굴에 참여한 인사는 김동현(81)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건길(75)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윤근일(71)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최병현(70) 숭실대 명예교수와 천마총 자문회의에 참가한 최병현 명예교수, 지건길 이사장, 김동현 전 소장, 윤근일 전 소장 등이다.
경북도가 1973년 천마총(天馬冢)이 발굴된 지 50년을 맞아 천마총을 재조명한다. 신라 문화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1973, 천마를 깨우다’기념사업을 오는 4월~12월까지 경주시 등 관계기관과 함께 추진한다. 기념사업의 이름인, ‘1973, 천마를 깨우다’는 작년 10월~11월까지 문화재청 주관으로 진행된, ‘천마총 발굴 50년 기념사업 명칭·상징(엠블럼)·표어(슬로건)공모전’서 선정된 명칭이다.
천마총 발굴은 1971년 청와대 주관으로 수립됐다.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라 1973년 문화재관리국(現 문화재청)이 미추왕릉지구 발굴조사단(現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을 조직해 시행한, 국가 주도의 첫 번째 발굴 사례였다. 당시 고총 155호분(천마총)에서 1,500년 전 신라 회화 작품인 천마도 장니(障泥, 말다래), 신라 금관(金冠), 금제 허리띠 등 국보 4점, 보물 6점 등 총 1만 1,526점의 중요 유물이 출토됐다. 장니란 말을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방형의 안장 부속품이다.
천마총의 가치를 국민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 12개의 행사가 준비됐다. 경북도, 문화재청, 경주시,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국립경주박물관이 협력한다.
우선 1973년 발굴 때 참여했던, 조사원들의 생생한 발굴 소회를 듣는 좌담회(4.6)로 시작한다. 천마총 발굴 50년 기념 비전 선포식(5.4), 2014년 천마총 특별전 이후 약 1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천마도 장니 실물 공개 특별전(5.4~7.16), 천마총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을 문화유산 미디어 아트(5.4~6.4), 천마총의 어제와 오늘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학술대회(10.25~10.26) 및 토론회(포럼)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천마총은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다. 경북도는 풍부한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문화의 힘을 확실한 지방시대를 여는 동력으로 삼는다.
천마총이 위치한 대릉원은 전 국민의 대표 관광지다. 수학여행지로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지금도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사랑받는다. 최근에는 경주 황리단길과 함께 젊은 세대가 꼽는 여행지 1순위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미래 천년을 이어갈 문화 자산으로 확산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번 천마총 공개행사에 경북도와 경주시는 너무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행정 전문가집단이기 때문이다. 재정을 보탠다면, 지원은 하되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지켜야한다. 그리고 오는 4월부터 12월까지 공개행사를 하되, 그 중간에 천마총의 안식일(安息日)을 간헐적으로 둘 것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