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 이름이 어렵다. 며칠 전에는 아파트 이름을 두고 ‘외계어’라고 할 만큼 이상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 이름을 길게 영어로 짓는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가 한때 유행하긴 했었지만, 최근 아파트는 그 이름이 우아하고 고급스러워야 그 가치가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있어서인지,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은 것 같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전국의 아파트 이름 중에서 가장 긴 것이 25자가 된다고 한다.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1차’와 ‘~2차’가 그것이다. 과연 그 입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이 아파트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달하거나 글로 적어야 할 때, 제대로 다 말하고 적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또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도 20자를 넘기는 곳도 많다는데, 과연 꼭 이렇게 아파트 이름을 길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굳이 긴 이름이 아니더라도 외국어여서 발음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캐슬, 써밋 등과 같이, 한 단어로 구성된 것도 있지만, 루체하임(루체:빛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하임:집을 뜻하는 독일어)과 같은 2개 이상 국적의 단어가 합쳐진 것도 있다. 여기다 건설사 고유의 이름을 머리에 붙이니까 기본적으로 이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건설사 고유 브랜드 자체도 우리말이 아니라 외국어여서 금방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파트 이름을 길게 짓게 된 걸까? 아마도 집이 주거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재산증식의 수단이나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통하여 정서적 따뜻함을 추구하기보다는 경제적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이름 자체를 브랜드화하여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추세로 굳어져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주민의 뜻을 반영한 아파트 이름을 지으려다 보니, 온갖 고급스런 낱말을 이름에 붙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 이름이 꼭 무슨 의미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언뜻 그 이름만을 놓고 보면, 그 이름이 주는 의미는커녕 우리나라의 아파트인지도 모를 경우가 있다고 하니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때마침 최근 서울시가 '알기 쉽고 부르기 쉬운 공동주택 명칭 관련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아파트 이름을 지을 때마다 관청이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쉬운 이름을 지으라고 강제 할 수도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아파트 이름이 너무 길거나 지나치게 외국어 투성이라 입주민은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 불편한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어떤 권고안이라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참에 만약 필자에게 이름을 지어보라면, 우리나라 고유의 꽃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래서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처럼 아파트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을 말할 때마다 우리는 꽃과 같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해본다. 이미 우리 지역만 하더라도 꽃 이름 아파트가 있기는 하다. 목련아파트, 진달래아파트, 개나리아파트, 장미아파트, 코스모스아파트 등이 떠오른다. 꽃 이름으로 되어 있어 아파트 이름만 불러도 이미 우리는 꽃 한 송이씩은 머릿속에 새기는 셈이지 않은가.
또 꽃 이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그 무엇이 있을 것 같다. 목련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왠지 목련처럼 순수할 것 같다. 목련 하면 ‘4월의 노래’가 떠오르는데,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에서 처럼 순수함이 뚝뚝 하얀 목련꽃으로 묻어나는 듯하다.
그리고 진달래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끝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시대를 막론하고 서로 인정을 베풀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질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꽃이 진달래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까닭이다.
개나리아파트는 어떤가? 이는 화사하게 서로 기대고 웃으며 허물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아파트 같다. 많은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서로에게 어깨를 맞닿아 의지하고 있는 개나리꽃의 화사한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장미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인정 냄새를 물씬 날리며 사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 같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미워해도 그 아름다운 향기 한 번으로 미움이 사르르 녹아내리게 하는 인상 때문이다.
코스모스아파트 사람들은 참 맑은 모습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아파트 같다. 가을 햇살과 잘 어울리며 혼자만의 고집은 절대 부리지 않을뿐더러, 바람에 흔들리며 오히려 다른 이와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파트 이름을 25자나 되는 긴 이름으로 하기보다 아름다운 우리 꽃으로 하면,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꽃이 주는 이미지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