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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익(國益)에도 ‘옳음’과 ‘그름’ 이 있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07.27 17:30 수정 2016.07.27 17:30

민(民)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관료들은 민(民)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젠 공정사회가 없다고 본다. ‘성주군 사드배치’란 국책선정 이번에도 실패했다.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권력자의 욕구는 내면자리에 있어 그 상(相)이 쉽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욕구표출은 이전보다 양적으로 지멋대로 하고 노골적이며 민(民)을 위한 공약은 말(言)뿐이다. 소통은 쌍방향적인 것이다. 민(民)들은 불만과 고통을 느끼게 되고 추구하는 희망의 역할을 본인들이 감당 수행해야만 변화의 시대에 도래하고 있다. 옛날 조선시대에도 관료들은 나라 일을 하는데 있어 너나없이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다. 왕이 눈과 귀가 닫혀 고유권한만 세우고 신하와 통(通)하지 않으면 신하들의 ‘충(忠)’은 어떻게 해서라도 상소한 정책기록인 건의서 ‘시무책(時務策)’에서도 첫 번째 정책이 ‘간신을 구별하라’는 건의가 들어 있다. 왕의 업무 중 상소를 올려 관철되지 않으면 충(忠)의 방편으로 너도 나도 벼슬자리를 내던지고 낙향했다한다.미래시대로 갈수록 다양성으로 인해 복잡하며 이해집단이 세분화되는 상황 속에서 공공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이기주의가 만연한다면 국가는 패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허나, 살아가는 동안 어떤 명분이든 ‘옳음’과 ‘그름’ 에 대해 도덕적 가치를 교육받은 사회적 구조를 기반으로 시비(是非)의 검증을 위한 잣대는 민족적보편성으로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의 사고가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옳고 그름에 대한 시대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허나, 항일독립운동선열들이 위대한 것은 그들의 높은 행적뿐만 아니라 그 행적을 이룬 밑바탕으로서 높은 도덕성과 인간성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나의민족이 통일되기 위하여..... 미래의 부끄럼이 후손보기를 없어야 한다.나의나라 민(民)들은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인간성을 갖춘 품격을 으뜸으로 사회국가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항일독립운동선열들의 도덕성과 인간성을 키워야 하는 까닭은 이제 내가 아닌 우리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곱씹을 때이다 고 한다.권력자의 욕구와 어리석은 관료들의 반(反)인륜, 반(反)민족의 오염된 물에 모이는 모리배를 민(民)들은 불쌍한 모리배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모르는 이웃과 남을 위해 함께 행동 하는 것이 이 땅에서도 없는 반(反)민족에 반(反)한 체제를 찬양하고 동경하는 민(民)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가난하고 힘없는 이웃 민(民)들은 이익을 위해서도 ‘국익(國益)’이란 명분에서 소신은 마음으로 받았다. 기본에서 적어도 그런 방향성을 가졌다. 그런 이치로 보아 미래는 ‘국익(國益)’을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소수민(民)들의 ‘국익(國益)’을 위해 요구하는 ‘성주군 사드배치’ 불소통의 권력자의 욕구와 어리석은 관료들의 강행이 미래 명분 없는 국익(國益)으로 어리석음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짜 우방 간의 협정인지 모리배 협잡인지 의심하게 될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주군 사드배치’는 나의나라 민(民)들이 대대손손 하민(下民)처럼 살게 하려는 민서(民書)와 다름없다. 아직도 충(忠)이 있다면 민(民)에게 직접 ‘성주군 사드배치’의 장점보다 단점에 대해 토론하고 민(民)으로 하여금 ‘옳음’과 ‘그름’ 에 대해 도덕적 가치를이해하는 미래마음을 구해야 한다. ‘성주군 사드배치’ 관련해 단점의 가치를 마음으로 소통해야 답이다.국익(國益)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미래마음으로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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