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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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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쓰는 칼럼의 후원자 겸 최종 검열자가 있는데 그들은 바로 나의 두 아들이다. 혹시나 내 글이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사고가 바탕이 된 것은 아닌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것을 마치 새로운 발견인 양 매달리는 어리석음은 범하고 있지 않은지, 아들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직장생활을 한 지 벌써 2년이나 지난 큰 애는,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여 상도 여러 번 탔고, 어느 유명 출판사에서는 대학 다닐 때 쓴 글을 보고 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는데, 지금도 명절 연휴에는 책을 한꺼번에 여러 권 사서 읽을 정도다. 서울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한 작은애는 논문에서부터 시사적인 글까지, 시간만 나면 글 읽기를 즐기는 터라, 엄마로서 조금 과장하여 자랑하자면, 이들은 글에 대한 감각의 시대적 첨병이라 해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어느 하루 우연히 작은아들이 문해력을 주제로 한 일화를 내게 소개해 준 적이 있다. 한 카페에서 웹툰 작가 사인회를 하기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난 것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불편을 끼쳐 ‘심심한’사과를 드린다는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누리꾼들이, 사과하는데 심심하다는 표현을 썼다고 비판을 쏟아냈다고 하는 줄거리의 에피소드였다.
‘심심’을 ‘매우 간절한’ 뜻으로 이해하지 않고 ‘지루하고 재미없는’뜻으로 해석하여 빚어진 촌극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심심한 사과'에서 ‘심심’을 한자로 해석하면 ‘매우 간절한 사과’인데, 한글로 해석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과’이니, 한글세대는 왜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없게’ 하느냐는 것이고,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매우 간절한 사과’를 잘못 해석하느냐는 주장이었다. 또 잘못 해석한 그 사람을 향해서는 문해력이 없는 사람이며, 우리나라 국어교육이 이 지경에 와 있다는 냉소적인 비판까지 일게 하였고,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난도 이해는 갔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심심’을 한자로 “甚深”하고 썼다면, 심심이라는 것이, 당연히 '깊고 간절한 사과'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마땅하지만, 이 한자어 낱말을 한글로 ‘심심’으로 썼으니, 한글세대는 한글로서의 뜻으로 해석하여 '지루한'이라는 잘못된 해석을 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를 두고 문해력이 어떠니, 문해력이 없으면서 대꾸를 왜 하느냐는 식의 막무가내 일방적 공격은, 그 사람을 지나치게 궁지로 몰아붙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심심한 사과’에서 전체적 문맥으로 본다면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뜻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한자 세대가 아닌 사람들의 해석이다 보니 틀릴 수 있다는 포용이 오히려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이는 얼마 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소위 ‘사흘’사건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사흘’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는데, 그 까닭은 이것이 3일이냐 4일이냐의 논란 때문이었다. 일, 이, 삼, 사의 ‘사’자라는 글자가 들어갔으니, 사흘을 3일이 아니라 4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 빚어진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글자 그대로의 정확한 ‘문해력’의 문제이다.
사흘은 3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이를 4일로 해석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그 낱말을 잘못 해석함에서 오는 빈곤한 문해력 때문이다. 이것은 한자어를 한글로 쓴 것도, 한글을 한자어로 쓴 것도 아닌, 우리말을 우리말로 쓴 것이므로 앞에서 언급한 ‘심심한’의 경우와는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한자어인 ‘심심’을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한글로 표기하여 한글 해석인 ‘지루하고 재미없다’로 이해하게 된 것은 문해력이라는 낱말로 온전히 비난받을 만한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즉, 한글로 표시해 놓은 것을 우리가 잘못 해석하는 것은 문해력의 빈곤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지만, 한자를 ‘한글’로 표시해 놓았거나 한글을 한자로 표시해 놓은 것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고 해서 문해력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지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때마침 ‘어른의 문해력’이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 책에서는 문해력을 ‘헬스장 운동기구 활용’으로 인용하고 있다. 헬스장에 놓인 운동기구가 아무리 다양하게 잘 구비되어 있더라도 코치가 그 사용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듯이, 문해력도 전문적 코치를 받지 않으면 좋은 단어가 아무리 잘 나열되어 있더라도 문장의 해석이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해력도 체급이 있는데, 실례로 ‘향유하다’, ‘반추하다’, ‘핍진하다’, ‘이울다’, ‘달뜨다’, ‘자별하다’, ‘진작하다’ 등의 7개 단어를 제시하고 그 뜻을 물어 맞힌 문항에 따라 1급에서 3급까지 급수를 매기자고 하였다.
어쨌든 ‘어른의 문해력’ 책에서, 우리의 짐작 이상으로 어른들의 문해력이 낮다고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는데, 마침 책의 끄트머리에 “칼럼 읽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로 효과적인 문해력 공부법을 제시하고 있어, 밑줄을 쳐두고 나중에 곱씹어보기로 하였다.
사실 필자도 한 번씩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글 쓰는 일이 주업도 아닌 까닭이라 스스로 위로해본다. 다만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젊은 세대의 사고와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려 부단히 애쓰고 있으니 평균적인 다른 사람보다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문해력이 나아가고 있으리라 긍지를 가져본다. 그래서 이 글 ‘어른의 문해력’에 대해서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호소력 있게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걱정스럽게 두 아들에게 기꺼이 점검을 받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