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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매뉴얼의 두 얼굴

황보문옥 기자 입력 2022.12.13 09:45 수정 2022.12.13 12:48

엄진엽 대경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법령준수의무에 따라 공무원은 성실히 법령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국민을 대상으로 일관성 있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따르는 것 또한 일맥상통하다. 업무에 표준화된 매뉴얼을 적용하는 것은 공무원 개개인의 업무역량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생산성의 편차를 줄이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행정 서비스의 공정성을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득과 실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매뉴얼을 통해 현장성과 유연성을 요하는 업무 방식을 회피하여 장기간의 노력 없이도 손쉽게 목표를 달성하고, ‘모두가 다 이렇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업무 과실에 따른 책임으로부터 벗어 나는 행위를 반복 할 경우, 조직내 자신의 가치는 상실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직급에 맞게 주어진 업무를 매뉴얼에 따라서만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업무 분장이 신성불가침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이에 자신의 업무를 제외한 것에 대한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전반적 업무에 대한 책임성이 결여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직원 간 의사소통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는 원활하고 깊이 있는 소통이다. 비단 공무원 개개인뿐 아니라, 타 부처와 기관 간에도 요구되어야 할 사항이나, 현재 공무원 조직에서는 선후배 간의 소통을 통한 교육 또는, 직원간의 심리적 교류보다는 매뉴얼에 기반을 둔 일방적 혹은 피상적 형식의 정보전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매뉴얼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 머물며 자신의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최소화하는 공직자가 많아 질수록 조직의 위상 약화는 불가피하다. 법구경에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고 했다. 조직이 약해지면 언젠가는 개인 또한 그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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