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 식품회사가 ‘네넴띤’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네넴띤? 나는 순간 멍했다. 도대체 네넴띤이란 제품도 있었던가?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해간다 해도 내가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이 제품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네넴띤이란 바로 비빔면이었다. 저으기 실소가 머금어졌다.
비빔면이 왜 ‘네넴띤’이 되었을까? 한글이 닿소리 홀소리의 조합이다 보니 비슷한 모양의 글자를 익살스럽게 따온 것으로 생각된다. 발음과 뜻은 전혀 다르지만, 외관상 비슷한 글자로 바꿔 쓰고자 하는 세태를 반영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 사이에선 호기심을 자극해서 구매를 유도하기에 적당한 아이디어라고 하는 데에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재미있다고 칭찬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네넴띤이 비빔면이라고 금방 알아차리지는 못할 것 같다. 필자의 경우는 그나마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은 터라, 이런 말이나 현상에 금방 적응하는 편이어서 ‘네넴띤’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해석에 애로를 겪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이런 언어의 사용가치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1주일 전 우리 지역의 한 신문에서 “댕댕이를 오래 살게 하려면?”이라는 한 면 전체의 통기사가 있었다. 지면을 샅샅이 훑어봐도 댕댕이가 뭔지 그 설명은 아예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기사 본문에서 반려견, 노령견, 소형견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고, 삽화도 강아지 그림이어서 ‘아, 댕댕이가 멍멍이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또 ‘귀엽다’를 ‘커엽다’로, ‘대통령’을 ‘머통령’으로 쓰는 경우도 예능프로의 TV 자막으로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보았고, ‘대구’를 ‘머구’로 표시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훈민정음에 대칭하여 인터넷 표현규칙을 정리한 ‘야민정음’이라고 한다는 대목에서는, 그것의 표준어 여부를 떠나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과연 이렇게 써도 괜찮은가 궁금하여 여러 군데를 찾아보니, 이런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뉘고 있었다. 하나는 언어가 주는 원래의 의미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재미 삼아 한 두 번 쓰는 일은 익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 것을 마치 새로운 언어의 발견인양 정당화시키려고 하는 일이 젊은 층 위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이런 사용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었다.
또 다른 의견은 그 반대였다. 낱말은 시대적 욕구의 반영이기 때문에 굳이 이런 파격적 사용을 나무랄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이런 현상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어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언어가 가지는 특성이므로 그 자체를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은 최근 매스컴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 내용의 전체적 흐름은 지금까지 격식을 갖춘 글이 잘된 것이라고 인식하던 시대에서, 현재는 격식을 파괴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감성을 짧게 요약하여 전달하되, 상대방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필자는 카톡(kakao talk), 이모티콘(emoticon), 밈(meme) 등은 바로 그런 필요 때문에 생긴 시대적 현상이라 생각한다.
‘카톡’만 하더라도 그렇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우리는 ‘카톡’을 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필자는 오늘 하루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과 카톡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격식을 차리거나 교과서적 낱말의 개념을 생각해가면서 ‘카톡글’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문자나 이모티콘도 생각나는 즉시 선택한 것으로 문법상으로 틀리지는 않았는지 고민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런 격식을 따졌다면 소통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길어졌을 것이고, 아마 소통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한편 생각해보면 언어 자체가 시대적 필요에 따라 새로 탄생하기도 하고 또 소멸해간다는 의견이 일리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메시지 자체가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해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물의를 일으키거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여도 문제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즘의 인터넷 세대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문자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칭찬받아야 한다거나, 새로 지어낸 문화현상을 무조건 환영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마트폰에서의 이모티콘만으로 나의 감정을 충실히 나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혹시나 “네넴띤을 아십니까?”라고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물어 왔을 때,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뒤처진 사람이라고 부끄러워해서도, 그렇다고 모른다고 자랑스러워해서도 안 될 일임을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