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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순연 편백숲하우스범어점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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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음 맞는 친구와 자주 여행을 갔다. 여행이라 해봤자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갈래?”로 서로 의사만 통하면 당장이라도 떠나는 것쯤으로 서로 생각하고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가볍게 떠났던 여행에서 두 곳이 크게 감명 깊고 색달랐다. 그곳은 바로 외도(外島)와 욕지도(欲知島)다.
외도는 한 번쯤 안 가 본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연유는 아마 아주 잘 가꿔진 정원의 꽃과 나무들 때문일 것이다. 해상농원이라 할 만큼의 풍부하고 다양한 식물의 보고로 가꾼 그 사연도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욕지도 또한 뒤지지 않는다. 온갖 약초가 뒤엉킨 골짜기기마다 이를 먹이로 하는 사슴들이 많다 하여 록도(鹿島)라 불렸다가 이후 이곳 섬이 거북이 모양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浴地)라고 하다가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두 섬의 공통점은 바위가 무성한 황폐한 무인도에 가까운 섬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에 내놓아도 매우 아름다운 섬으로 손색없이 변모했다는 점이다.
그런 변화에는 아마 나무가 크게 한몫을 했기 때문이리라. 필자가 나무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여행지마다 그곳 나무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게 되어 필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리라 여겨진다. 문득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것이, 그 섬을 가꾸는 최고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개척자의 생각에 존경과 경외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얼마 전 우리 지역의 한 언론에서 모감주나무를 다룬 적이 있었다. 모감주나무는 꽃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게 종자라는 사실과 그 씨는 단단해서 만지면 만질수록 윤기가 나서 스님들의 염주에 주로 사용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중국 송나라 때 유명한 스님인 묘감(妙堪), 혹은 불교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을 일컫는 '묘각(妙覺)'에 구슬을 의미하는 '주(珠)'가 붙어 '묘감주나무'나 '묘각주나무'로 부르다가 지금의 모감주나무가 됐다.”고 하는 설명은 처음 접하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용목(龍木)이라는 것도 있다. 무슨 나무 종류가 아니라, 나무가 매우 어렵게 자라는 과정에서 생기는 눈 같은 무늬를 일컫는데, 그냥 평범하고 평탄하게 자란 나무는 그런 무늬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살아남기 힘든 환경에서 나무가 스스로 온 힘으로 버텨 살아가려 애를 쓸 때, 그 과정에서 나무밑동 부근에 가까스로 생기는 생명의 흔적 같은 것이다. 그 울퉁불퉁한 밑동에서 소용돌이치는 눈 같은 무늬가 생겨나, 그 모양이 마치 용의 눈과 같다고 하여 그 의미로 '용목(龍木)'이라 부르는데, 모든 나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름조차 생소한 나무들도 많다. 가구를 만드는 데 최고인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오동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정도는 알고 있지만, 먹감나무나 참죽, 똘배나무 등은 쉽게 접할 수도 그 주된 특성이 무엇인지 나무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나 나무에 특별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수많은 나무 중에 특별한 것을 고르라면 나는 단연 편백을 꼽는다. 흔히 목질이 좋고 향이 뛰어나 실용성이 높은 것까지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다. 최근에는 이런 특징의 편백에 대한 많은 기삿거리가 있어서 홍보는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가구 제작은 물론 건물의 내부 벽체, 인테리어용으로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가격이 만만찮아 대중화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전문가의 충고도 있어서 업계에서는 많은 저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또 피톤치드가 아토피 치료에 효과가 있음이 알려지고 편백이 소나무보다 그 효과가 높다고 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지금은 편백을 이용한 각종 생활용품이 다양하게 생산되고 또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그 증명된 효용만큼 널리 애용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인데, 이것이 우리 고유의 수종이 아니라 일본의 대표적 수목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건 지나친 유추인 것 같다.
어쨌든 우리가 필요해서 나무를 가꾸고 사용하지만 실상 나무는 우리에게 더 많은 혜택을 되돌려 준다. 그래서 흔히 사람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사람을 키운다고 하지 않는가.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도 있다. 반듯하게 우뚝 솟은 나무도 있고, 비틀어져 볼품없는 나무도 있지만, 전자는 관상용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십상이지만, 굽은 나무는 제자리 지킨다는 의미로, 다소 못났어도 상황에 따라 더욱 제 역할과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이른 봄 가지치기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가지를 그대로 두면 계속 위로 나뭇가지가 솟아나게 되고 그런 가지에는 실한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가지가 잘려 나가고 꺾여 볼품없어 보이는 나뭇가지에 실한 열매가 많이 맺히는 이치다. 마찬가지로 우뚝 솟은 사과나무나 위로만 잘 자란 복숭아나무, 감나무는 그 열매가 크지도, 많지도 않다. 이를 두고 어느 시인은 나무가 사람 닮았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시련과 역경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은 유순하고 부드러우나 내적인 강인함이 부족하다는 뜻이리라.
차제에 표면이 매끄럽고 향이 좋아 인공적인 칠 없이 원목 그대로 쓰이는 편백처럼, 우리 삶도 인공적인 치장이나 꾸밈없이 주어진 거친 환경을 극복하며 겸손히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