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5년 1월 11일 폐광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문경시에 문화관광의 새바람이 불어오고, 이에 발맞춰 '문경문화유적동호회'란 이름으로 문화재 보호활동과 지역 문화관광을 선도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가진 순수 민간단체가 첫 출발을 했다.
문경시는 일제강점기부터 검은 황금, 검은 진주라는 석탄산업의 혜택으로 지역 경기가 호황이었고 석탄만 캐내면 천 년 만 년 남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그때는 자타가 인정하듯 문경이 잘나갔던 시절이었다. 석탄 경기가 좋았던 1970-80년대엔 인구가 16만 명이 넘었으며, 안동 가서 양반 자랑하지 말며, 남도 어딘가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문경 와서 돈 자랑하지 말라 는 말이 생겼으며, 삐루(맥주)소비가 대도시를 능가했음은 물론, 탄광촌 뒷골목에는 강아지가 시퍼런 배춧잎(만 원짜리 지폐)을 물고 다닌다고 할만 치 돈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문경시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해 모든 광산이 문을 닫게 된 상황에서 앞일을 대비해 석탄에 버금가는 대체산업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결국 폐광 후 급격한 인구 감소와 경기불황으로 찬바람이 불어오고 살길이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의지의 문경인이 그냥 쓰러질 수 없는 일, 관·민이 한마음으로 이 난국을 극복하고자 수려한 자연경관과 유무형 역사 문화자산을 활용하여 많은 투자비가 들지 않고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굴뚝 없는 산업, 문화관광사업을 선택하고 집중한 결과 사극 전용촬영장인 '문경새재오픈세트장'을 만들고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이 문경 시민들 보면 형님! 하고 무릎 꿇을만한 혁신적 아이디어로 달빛을 판 '문경새재과거길 달빛사랑여행', 폐철로를 활용한 국내 최초의 레일바이크가 운행되고, 길조차 문화재로 만들어 옛길을 관광 자원화하는 등의 사업을 펴 마침내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위'로 선정 연간 관광객이 최고 600만 명 이상 다녀가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모두가 놀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저력이고 성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지역 경기 향상과 주민 소득증대에 직결되자면 시설투자 등 하드웨어만으로는 부족하고 소프트웨어 즉 운영 프로그램이나 관광객을 맞는 따스한 손길과 마음을 지닌 스토리텔러 관광 전문 민간인력이 필요했다.
이 전문인력 산실이 바로 '문경문화유적회'라고 말할 수 있다. 본 회 창립은 '대한민국 문화원대상'을 수상한 채대진 전 문경문화원장으로부터 비롯됐고 필자가 그 뜻에 따라 손을 맞춰 함께 이뤄 나갔다.
공무원 정년퇴직 후 우연한 기회에 원장을 만나 의기투합해 문경문화원 문화학교에 특수반으로 문화유적반을 신설하기로 하고 홍보, 여기에 호응하는 49명의 교육생이 모여들어 2004년 10월 5일 제1기 문화유적반 개강식이 개최됐고 필자가 학생대표를 맡아 '문경의 문화와 역사'를 열심히 함께 배웠다.
그중 참고 견딘 30명이 수료했으며 그해 12월 문화학교 종합 발표회시 두근대는 가슴으로 첫 스토리텔링 발표회를 가졌으며, 그 이듬해에는 중급반 교육을 1년 더 받아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해설기법을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배운 지식을 지역발전을 위해 활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모두가 뜻을 같이해 문화유산 지킴이, 문화관광해설 및 안내도우미 역할을 수행한다는 목적으로 문화단체를 결성하기로 하여 2005년 1월 11일 26명으로 구성된 '문경문화유적동호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당시 임원으로 고문은 채대진 문화원장·고재하 향토사연구소장, 감사 이충재·정희열, 회장 이만유, 부회장 이창근·이한숙, 사무장 강길자였다. 이후 단체 명칭도 '문경문화유적회'로 변경하고 해마다 문화학교 수료생을 영입, 회원 수가 늘어나 지금까지 70여 명이 왕성한 활동을 하며 문경문화관광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창립 초창기 주요 활동실적과 에피소드를 되돌아본다면, 고모산성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주요 명소 및 문화유적지에 대한 정화 및 관내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정기 및 수시로 전개했으며, 아직 배우는 단계였지만 당시 문경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3명밖에 활동하고 있지 않아 많은 관광객이 오시면 속수무책 대체할 전문인력이 없었다.
그때 우리를 주목하고 임시해설사로 활동하라는 제의가 들어 왔다. 당시 남효근 박약회 회장이 유치한 박약회 전국총회가 문경에서 2005년 4월 17일 개최됐고 전국의 박약회 회원 1,227명이 방문, 20여 대의 버스로 관내 문화유적 및 관광지 답사시 안내 해설을 맡게 되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그때 우리 회원 전원은 밤잠을 자지 못하고 순회 코스에 있는 문화재는 물론, 유교 예절, 현판 글씨, 예상 질문 등에 대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안내 해설에 임했는데 어느 회원은 10시가 되기 전에 꼭 잠자는 습관이 있었지만 12시가 넘도록 자지 않고 공부하는 부인을 보고 남편이 “뭔 일이야?”하고 놀랐다고 하고, 부친상을 당하고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슬픔을 참고 참여한 회원, 병원에 입원 투병 중에도 나온 회원, 서울대학병원에 부인의 진료 예약 일자를 연기하면서까지 나온 회원, 안내 하루 전날 팔이 부러져 깁스하고도 나온 회원, 독실한 교인으로 교회에 나가야 하는 데도 참석한 회원, 친척 결혼으로 서울 가야 하는데도 참석한 회원, 첫 대중 앞 해설이라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우황청심환을 먹고 온 회원 등 사명감과 열성을 가지고 참여했다.
그래서 문경문화유적회가 창립 당년 1년간 안내 해설한 활동실적을 보면, 박약회 전국총회 700여 명, KT 가족 4,000명이 문경 하계휴양을 할 때에 숙소인 M빌리지모텔에서 1달 여 동안 안내소 운영, 삼성전자 직원 306명, 현대백화점 VIP 고객 50명, 문경상이군경회 80명, 서울중랑·파주·부산사상문화원 190명 등 5,872명을 안내하는 실적을 올렸으며, 이듬해에도 꾸준히 주요 관광지에서 안내 해설을 했으며,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한 야간여행 상품인 '문경새재과거길 달빛사랑여행' 해설, '운강이강년기념관'고정 배치 해설 등 자원봉사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 이후 이런 활동이 알려지자 지자체의 관광사업 발전에 기여한 민간단체 우수 사례로 국내 최대 중앙 일간지 조선일보를 비롯한 경향 각지 여러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취재 보도했으며 특히 안동 MBC 특별 초청 '퀴즈쇼 문화재발견'프로그램에 출연, 대구 MBC '경상도愛발견-보물찾기'프로그램에서 고모산성 현지 활동상황을 취재 방송했다. 또한 행정기관에서는 문경 자체 문화유산해설사 제도 도입 차원의 시장 명의의 '문화유적안내원증'을 발급 패용하게 해 자긍심을 높이기도 했다.
이런 활동과 성과에 의해 '문경문화유적회'가 명실상부 문화관광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고 문화관광 활성화와 지역경재발전을 위해 필요한 단체로 부상했으며, 이렇게 인정받을 수 있게 초창기부터 활동하던 회원들은 전문화돼 제도권 안에서 보장받는 신분. 즉 경북도 문화관광해설사, 석탄박물관 과학해설사, 향토사연구위원 등으로 20여 명이 활동하게 됐다. 결국, 두 말 필요 없이 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문화재를 지키고 문화관광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경문화유적회'회원들이야말로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문화관광도시 문경을 만든 진정한 민간 주역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