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지역 장례식장은 안치실이 부족하여 더 이상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어느 일간지 보도가 있었다. “고인을 모시기 위하여 며칠씩 대기하는 유족도 있고,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안치실을 예약하는 전화가 오기도 한다”는 현장 목소리를 전한 것이다.
그야말로 안치실 확보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이는 곧 화장장 대란으로 이어져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자 정부는 코로나 사망자 유가족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던 장례지원비를 없애기로 했다고 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화장 권고 규정도 저절로 무용하게 되는 셈이다. 최근의 코로나 사망자 급증으로 인한 화장장 포화상태를 줄여보자는 문제해결 방법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조치는, ‘화장장 대란’에 대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문제 인식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8,172명이나 되는데, 그러다 보니 안치실이 모자라고 화장장 확보가 어려워짐은 당연한 결과이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일부에서는 정육점 냉동고를 안치실로 쓰기도 하고, 하나의 공간에 관을 포개어 안치하는 경우도 있다하니 과히 또 다른 차원의 큰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며, 게다가 문제해결이랍시고 내놓는 것은 모두 일이 불거지고 난 후 동분서주하는 모양새를 갖췄기 때문이다.
과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정부가 메르스의 예방책이라고 내놓은 것 중의 하나에 ‘낙타접촉금지령’이라는 게 있었다. 이 병이 중동의 낙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사례에서 낙타와의 접촉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 사이의 반응은 “출근할 때 낙타를 타지 말아야 하겠다”거나 “정부 조치가 아니었으면 낙타고기나 낙타유를 먹을 뻔 했다”고 하는 유머를 담은 비아냥거림이 유행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낙타를 만나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만 겨우 볼 수 있는 형편인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낙타와의 접근을 금지한다는 예방책을 내놓았으니, 과연 당시에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정부의 발표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았던 것이다.
현재의 코로나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야 해결책이 바르다. ‘문제’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갭(gap between real state end desired state)이므로, 문제의 해결이란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격차를 줄여나가려는 자세가 필요다. 낙타와의 접촉이 현실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낙타와의 접촉 금지’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메르스 대책이나, 코로나 장례지원비를 중단하여 화장보다 매장을 유도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코로나 대책은 진정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메르스 당시, 몇몇 사람들은 소위 ‘메르스지도’를 만들기도 하고, 엘리베이트 버튼을 팔꿈치로 누르라는 현실적 정보와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소상히 전하여, 오히려 정부가 해야 할 ‘문제’의 인식을 선제적으로 하였다고 평가받았었다.
코로나 초기, 어느 국회의원은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대구 봉쇄론'을 문제해결책으로 주장하기도 하였고, 또 정부는 모이는 사람들 수나 영업시간을 지정하는 것을 문제 해결책으로 강제하기도 하였다. 지하철 등에서의 사람들 동선의 뒤섞임은 외면하고, 오직 식당에서 7명은 벌금을 내야하고 6명은 허용되는 그런 규정을 절대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코로나 해결책으로 내놓은 적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문제’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인데, ‘이상’은 병이 없는 청정한 환경이고, ‘현실’은 신종 전염병의 전파이니, ‘문제’가 생기긴 틀림없이 생겼는데, 그렇다면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상’에 ‘현실’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즉, 이상적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발병의 원인을 차단하는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 발병의 원인 중 하나를 몇 명까지 그리고 몇 시까지 외의 식당 출입이라는 것으로 단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규정을 어기면 벌금 등 행정적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알맞은 문제해결의 방법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풀 수는 있지만, 그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못 풀 뿐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자녀에게는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현실을 만드는 게 문제의 해결인데, ‘학교가기 싫은 아동에게는 절대로 밥을 굶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식의 예방책은 현실에서의 문제해결 방안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를 잘못 보면 그 해결도 잘못될 수 있고, ‘문제’가 정확하면 해결도 바르다. 따라서 올바른 문제를 찾아내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코로나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은 것도, 한 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임종 전에 안치실을 ‘예약’해야 하는 현실을 정책입안자들은 또 어떤 문제 해결책으로 대처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