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이 뽑은 지난 한 해를 특징짓는 사자성어가 묘서동처(猫鼠同處)다. 교수 신문이 교수 8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벌여 그중 가장 많은 응답을 보인 것이었다는데, 전체 응답 대상자 중 그 낱말을 선택한 사람이 29.2%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880명 중 250여 명이 선택한 단어인데 이것이 전체 교수들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교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인데도 이에 대한 두드러진 이의가 없는 것은, 아마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겪었던 그동안의 여러 상황이 이 말과 꼭 맞아 떨어진 것이라는 묵인이나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사자성어에 대한 풀이는 이렇게 되어 있다.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서, 한 지방 군인이 집에서 고양이(猫)와 쥐(鼠)가 젖을 빨고 서로 해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상관에게 보고하였는데, 그 상관이 쥐와 고양이를 임금에게 바치자 관료들은 복이 들어온다고 기뻐했다. 오직 한 관리만이 다른 사람들이 실성했다고 한탄했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한곳에서 있으니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에 대해 어느 유명 교수는 “공직자가 위 아래, 혹은 민간과 짜고 공사 구분 없이 범법을 도모하는 현실을 한 해 동안 사회 곳곳에서 목도 했다”하면서 우리 사회가 겪은 모순과 부조리를 은유했다.
지난해를 특정 하는 낱말로 중소기업인은 전호후랑(前虎後狼)을 꼽았다. “앞문에는 호랑이가 막고 있고, 뒷문으로는 늑대가 버티고 있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기업인들의 시선으로 본 작년의 상황을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
물론 이 낱말이 전국 500개 중소기업 대표자를 대상으로 하여 응답자의 27.4%인 135개 정도의 대표자 선택을 받은 것이라, 우리나라 전체 중소기업을 과연 잘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기업환경이 대부분 중소기업인의 시선으로는 마치 호랑이와 늑대로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무언의 동의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앞으로는 물류난과 인력난이라는 호랑이가 버티고 있고, 뒤로는 원자재 가격 폭등에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가 도사리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음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그런 가운데 작년 말에 2022년을 맞는 중소기업인이 뽑은 사자성어가 눈에 띈다. 작년은 비록 전호후랑(前虎後狼)이었지만 올해는 새로운 각오로 다시 뛰자는 사자성어를 달리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력이산(衆力移山)이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하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코로나 환경을 극복하고자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를 이길 것이고, 이런 노력은 나아가 산조차도 움직일 만큼 힘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해보자는 희망 섞인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자성어들은 연말에 주로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것이 만족하는 경우보다는 당연히 많을 수 있다. 따라서 만족하고 희망적인 것보다 아쉽고 불만족한 경우를 반영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꼭 연말에 할 것이 아니라 연초에 ‘희망의 메시지’로 내거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하여 묘서동처(猫鼠同處)나 전호후랑(前虎後狼)과 같은 연말의 자조적인 사자성어보다 중력이산(衆力移山)과 같은 연초의 희망적인 사자성어를 가려내는 노력을 더욱 활발히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과거가 과거로만 각인된다면 그만큼 새로운 희망에 대한 시선을 넓히지 못하기 일쑤다. 지난 고난과 비판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과거가 과거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던가? 과거를 알고 그것을 새로운 계획에 반영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인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것이 적용된다. 진영싸움으로 번진 선거운동을 보고는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있다. 아직도 부동층에 속한 사람도 많다.
과거에 이러하여 그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이제 새로운 결정을 하면 된다. 선거는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한 미래를 보는 것인 까닭이다. 묘서동처(猫鼠同處)나 전호후랑(前虎後狼)이 아닌 중력이산(衆力移山)이 중요시 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