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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3’이라는 숫자

홈페이지담당자 기자 입력 2022.02.20 10:06 수정 2022.02.20 13:51

장선아 경북과학대 외래교수

↑↑ 장선아 경북과학대 외래교수

우리는 ‘3’이라는 숫자와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도 많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은 마음먹은 3일이라는 뜻의 ‘굳게 먹은 마음도 사흘을 못가 흐지부지된다’라는 의미로, 마음먹은 일이 잘 이루어지느냐의 기준 일을 ‘3’일로 본 것이다. 그래서 흔히 계획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 비아냥거리며 흔히 사용하는 용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도 있다. 호랑이가 없어도 세 사람만 말을 맞춰 주장하면 결국 호랑이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로, 사실이 아닌데도 같은 말을 세 사람이 연이어서 하면 사실처럼 인식한다는 개념이다. 사실관계의 판단도 사람 수 ‘3’을 기준으로 본 것이다.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 하여 ‘3’의 힘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공자의 제자 중 ‘증삼’이란 이름을 가진 자로 평소 효행이 지극하고, 자신의 반성 시간을 매일 가지는 존경받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이와 동명이인인 사람이 살인을 지은 사건으로 동네 사람들의 오해가 생겨 한 사람이 달려와 그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건을 알릴 때도,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 얘기할 때도, 아들을 신뢰한 어머니는 미동하지 않았지만, 세 번째 사람의 말을 듣고서는 쫓기듯 도망갔다는 얘기는 그만큼 ‘3’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와 같이 ‘1’이나 ‘2’보다는 ‘3’이 갖는 의미나 시사성 사례는 매우 많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 역시 1을 남자, 2를 여자, 3은 그들 사이의 생명을 의미하는 뜻으로 썼고, 인간이 하루를 균형 있고 완전한 신체 관리에 도움받기 위해서도 아침, 점심, 저녁의 3끼를 정하였다. ‘셋’, ‘자주’, ‘세 번’, ‘거듭’ 등의 뜻을 가진 것 외 최소 3명이라는 ‘3’을 기준으로 한 사람의 숫자 이상은 집단의 개념으로 개인보다 훨씬 강력함을 갖는 것으로 믿었다.

1968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숫자 3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 있다. 그 연구팀은 뉴욕의 한 건물 6층에는 한 명의 남자만을 세워두고, 거리에는 미리 배치한 실험조에게 연구팀이 신호를 보내면, 일제히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게 하여 주변 보행자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이때 1명이 위를 봤을 때는 42%, 3명이 올려다봤을 때는 60%의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3인 이상이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고, 이는 곧 사회적 규범이 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것은 대중 심리학 이론의 ‘3인의 법칙’, 즉 ‘동조현상’과 유사한 유형으로 ‘군중심리’를 연구한 사례인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들 경험하는 일이다. 어떤 가게 앞의 여럿이 줄지어 선 장면을 목격할 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든지, 신호를 기다리던 건널목에서 한두 명이 무단횡단할 땐 ‘저 사람 뭐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세 명 이상이 건널 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도 덩달아 건너기 시작하는 경우가 그렇다. 두 과일가게가 나란히 자리해도 어느 한쪽 가게로 여러 명이 모여있다면 그곳으로 먼저 가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3주 후면 우리나라 대통령선거가 있는 날이다. 대선을 앞두고 최근 TV 토론 방송을 통해 4명의 후보자가 열띤 주장을 펼쳤다. 후보자마다 할애되는 시간이 짧은 관계로 충분한 내용전달에서 다소 미흡한 면도 없지 않았다. 일반토론에서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대선 후보자의 토론에서 요구되는 것은 더욱 많다. 필자 역시 강의나 글을 쓸 때면 요구되는 상황에 충실히 하고자 나름의 준비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번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을 느낀다. 꼼꼼히 살펴보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3번 이상’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 미흡을 극복하려 한다.

현재까지 두 차례의 대선 토론과정이 있었지만, 앞으로 몇 번 남은 토론에서는 또 어떻게 이어갈지가 기대된다. 1차 토론 합계 시청률이 40%에 가까웠던 것만 보아도 나라 살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유권자들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뜨겁다고 할 수 있다. 토론결과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 기관들까지 난립해 유권자들의 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도 요즘 많다. 특히 이번 대선은 이례적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라 그 지지율로만 봐서는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한, 간혹 조사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타나기도 하여 막판에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새롭게 출발하는 신개념 정치를 위해 개인적 이득을 위해 숫자만 채우는 ‘3’의 정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우리의 한 표를 똑똑하게 사용하여 자칫 잘못된 정보에 따른 오류와 특정 감정에 의한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선택을 받게 될 새 정치는 상호 간의 긍정적 견제를 통한 균형, 존중, 협력이라는 ‘3’박자를 갖춘 것이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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