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예부터 ‘아름’,‘다운’,‘ 우리’ ,‘나라’이었고, 지천이 ‘강산’이다. 백두(白頭)에서 한라(漢拏)까지, 어디든 호랑이가 많았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우리나라가 호담국(虎談國)이라고 호명했다. 1463년(세조 12)에는 경복궁 후원(취로정) 연못까지 호랑이가 출몰했다. 1467년(세조 16)에는 북악산서 나온 호랑이를 찾아, 세조가 추격대를 이끌고 직접 나섰다. 하지만, ‘호담국’에 이젠 호랑이가 없는 시대가 됐다. 이 같은 이유 뒷면에는 일제강점기가 있다. 일본은 패색(敗色)이 짙어지자,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승전가(勝戰歌)를 부르기로 작심했다. 한 사례를 들면,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1873~1927)가 1917년 ‘조선호랑이 사냥행사’를 개최했다. 사냥단의 이름도 ‘호랑이를 정복한다’는 뜻인, ‘정호군’(征虎軍)이었다.
1919~24년 사이 ‘6년간’ 포획된 호랑이는 65마리, 표범은 385마리였다. 포획된 호랑이 중에는 체중이 85관(318㎏)~90관(338.5㎏) 짜리 대형 호랑이가 포함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까지 합하면, 상상을 불허한다. 더구나 일제강점 기간을 더하고 보태면, 호랑이는 얼마가 될까. 당시 사이토 마코토(齊等實·1858~1936) 총독이 구입한 호랑이 가죽 2장은 크기가 7척(2m10㎝)이나 됐다.
일제는 또 호랑이 시식회(試食會)도 열었다. 일본 도쿄(東京) 데이코쿠(帝國)호텔에서 열린 시식회에는 현직 장관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조선에서 잡은 호랑이 고기를 먹어치웠다. 호담국의 명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일제 편이 아니었기에, 패전(敗戰)하고 말았다. 시식(試食)은 되레 조선 호랑이 기운이 ‘일본을 잡아 먹어치운’ 격이 됐다.
조선 호랑이는 지금도 한국에서 자연 번식한다. 자연 번식으로 태어난 멸종 위기종 1급인 한국 호랑이 5남매(수컷 2마리·암컷 3마리)이름을 작명했다. 이름은 ‘아름·다운·우리·나라·강산’이다.
이름 자체가 그야말로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상징한다. 호랑이 태호(아빠)·건곤이(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호랑이 5남매는 출생 당시 체중이 약 1㎏이었다. 3개월여 지난 지금은 약 10㎏로, 10배 가량 성장했다. 명당 터인, 에버랜드(Everland)에서다.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백두산 호랑이 ‘한청’<사진>도 강렬한 눈빛을 쏘고 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선, ‘호돌이’가 맹활약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엔 ‘수호랑’도 마찬가지였다.
십이지의 세 번째 동물인 호랑이는 달로는 음력 1월, 오행으로는 '목'을 상징하고, 시간으로는 새벽 3시부터 5시, 방위로는 동북동에 해당한다. 2022년 임인년은 검정색에 해당하는 천간 '임(壬)'과 호랑이에 해당하는 지지 '인(寅)'이 만나는 육십간지 중 39번째 해로 '검은 호랑이해'다.
호랑이는 신이한 존재로 인식되어, 산군·산왕·산신로 불리며 신앙의 대상이 됐다.
호랑이는 예부터 나쁜 것을 물리치는 벽사(辟邪= 액운 쫒음)의 뜻을 가졌다. 더구나 올해는 ‘검정 호랑이’의 해이다. 이 같은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예부터 내려오는 호랑이가 자기의 역할인, 나라의 모든 불운(不運)을 물리치길 소망한다. 벽사의 호랑이해를 전 국민들과 세명일보 독자들과 함께 경축(慶祝)한다~!
방기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