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 조달(早達)이 축복만은 아니다.
필자(나)는 25세 되던 1967년 1월 14일에, 꼭 스물다섯 살이 되던 생일에 서울 서소문동에 있던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로 은박지에 싸인 큼직한 국화송이를 가슴에 달고, 당선 상장과 거금(巨金) 2만 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필자(나)는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불우하기 짝이 없는 천덕꾸러기였다. 하필 하느님은 이런 나를 25세 생일날 가장 빛나는 생일 선물을 하셨다. 나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기성시인이 되는 특전보다 당장 큰 상금이 보약이었다.
당시 뒤늦게 교육대학을 고학(苦學)하느라 진 학채(學債)를 화끈하게 청산했다. 당시 2년제 교육대학은 1기분 등록금이 4500원이었다. 당선 상금 2만 원은 2년간 등록금을 납부하고, 2000이 빵실하게 남는 거액이었다.
만약 신춘문예 당선이 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큰 암초에 부딪쳐 파멸될 뻔 했는데, 하느님께서는 구조의 손길을 내미셨다. 내게 조달(早達)은 고맙게도 재앙이 아닌 축복이었다.
매사에 적극적인 필자(나)는 시·시조·수필에 정진(精進)하여, 확실한 삼가시인(三家詩人)으로 발돋움했다.
내가 80세까지 펴낸 책은 25세 때 첫 시집 ‘오뉘’를 펴내고, 팔순 기념으로 펴낸 ‘인연’까지 개인시집 45권과 ‘사장풍년’ 등 수필집 5권을 비롯, 김시종 개인 연간시집 ‘영강시안’ 28권과 문경문협회지‘백화문학’을 창간하여 34집까지 펴냈고, 이들 중‘백화문학 22집’은 경북개도(慶北開道) 백돌기념 타임캡슐에 경북대표 문예지로 유일하게 선정, 개도 400돌인 2396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이것 말고도 필자(나)가 제정한 문학상이 다섯 손가락을 헤아린다. ‘도천문학상’(천한봉 후원)이 12회(수상자 14명), ‘정문문학상’(김복만 후원)이 20회에 걸쳐 수상자 20명을 배출했다. ‘영강시안작품상’, ‘백화문학상’, ‘미산올곧문예상’(김선식 제정)도 꾸준히 시상되고 있다.
신춘문예 제정도 적극 권장하여, ‘세명일보 신춘문예’, ‘문경시민신문신춘문예’를 사주에게 적극 권장하여 실천을 보았고, ‘일간 세명일보 신춘문예’는 2022년에는 6회째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한다.
신문사와 응모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문예진흥이 활짝 꽃 피어, 이 땅 국민들에게 ‘삶의 기쁨’을 증진하고, 국민행복지수가 드높아지기를 두 손 모아 빌고 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