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의 주체는 주민이다. 과거 하향식 중앙집권의 주체는 행정기관이었지만, 지금 상향식 지방자치의 주체는 그 지역의 주민이며, 그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시·군·구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는 기초 시·군·구와 광역시도(특별시, 특별자치시·도)로 2원화 되어 있으며, 상하관계가 아닌 별개의 정부산하 법인이다.
국가의 직할인 광역자치단체는 시·군·구를 초월한 행정을 담당하며, 기초 자치단체인 시·군·구는 그 지역의 행정을 주민자치위주로 집행한다. 그러므로 지방자치는 주민으로부터 시·군·구와 시·도를 거쳐 중앙정부로 이루어지는 상향식행정으로서 풀뿌리민주제도의 근간이다. 따라서 행정구역개편이나 주요정책은 시군구 주민의견부터 수렴해야 한다.
더군다나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엊그제 시도민의 공감부족으로 무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서서 또 다시 거론한다는 것은 시도민의 뜻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특별광역연합으로 대구·경북 상생발전단계를 거쳐서, 궁극적으로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이루자는 취지라고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통합설레발은 황당무계하다.
행정의 기본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주요정책은 입안 단계부터 지방의회와 주민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도 어려운 일인데, 시·도에서 또다시 먼저 거론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이유라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명분을 갖추어야 하는데, 시·도 광역통합은 아직 법제도도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지난번 공론화과정에서도 시·군·구는 물론 시·도의회조차 도외시하고, 법적 제도는 있는지, 이득이 뭔지, 특별자치시인지, 특별자치도인지, 자치경찰·교육 등은 어떻게 할 건지, 청사는 대구인지, 경북인지, 시·군·구 균형발전은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인 대안과 합의도 없이, 일단 행정통합만 하면 다되는 것처럼 호도한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타 지역에서도 광역 메가시티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나 섣불리 행정 통합부터 먼저 내세운 지역은 없다. 선발 주자인 부울경 동남권 메가시티도 특별광역연합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에 행정통합 단계를 검토한다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면서, 대구·경북도 연합하여 상생발전부터 해나가는 합리적인 정책추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해외에서도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광역 메가시티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광역연합형태가 대부분이며, 아직 그 성과도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마창진 행정통합은 10년간 시너지효과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창원중심으로 쏠려서, 마산, 진해는 공동화현상으로 균형발전은 물거품이 되었다.
수도권의 블랙홀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을 이해하지만, 광역 시·도통합으로 제2수도권을 만들면 북부지역 같은 농촌소멸을 가속화시킬 우려가 크다. 2600만 과반인구와 전국 80% 경제의 거대한 블랙홀을 500만의 열악한 조건으로 대항한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렵다. 또한, 국토의 20%에 달하는 광활한 대구경북을 메가시티로 보는 것도 불합리하다.
만약에, 국가적인 행정효율화 차원에서 전면적인 행정구역개편을 한다면, 90년대 지방자치초기에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던 중앙, 광역, 기초 3단계를 폐지하고, 중앙에서 바로 지방생활권으로 2단계 행정구조개편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예를 들면 경북북부지역 생활권을 묶어서 하나의 지방정부로서 중앙정부와 2단계 자치행정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도 국가적 행정효율을 제고하여 생활권지방정부에 훨씬 많은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가 있으며, 거기다가 지방 일괄이양과 6대4의 재정분권까지 확보하여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상태라도 지방분권을 확실하게 실시한다면, 수도권집중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수도권 블랙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시·군·구의 자치분권을 확실하게 보장하여 인구를 유입할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광역통합으로 가버리면, 수도권분산도, 지역균형발전도 이룰 수 없는 피박만 쓸 수 있다. 특단의 조치로, 공공기관, 기업, 학교, 병원 등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집중지원 하여, 과천, 홍콩, 싱가포르, 실리콘밸리 같은 강소 단체를 육성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