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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위약 효과)’는 효과 없는 가짜 약 혹은 꾸며낸 치료법을 환자에게 제안했는데,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마음 관리가 우리의 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 지난 1950년 영국, 15세 한 소년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소년은 태어났을 때부터 피부가 두꺼운 검은 유두상 병변으로 덮이는 ‘선천성 어린선’을 앓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소년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목, 흉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병변으로 덮여 소년은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해 3월에는 피부 이식 수술까지 받았지만, 한 달 만에 수술 전 상태로 되돌아가 버렸다. 병의 원인도 알 수 없고, 밝혀진 치료 방법은 별 효과가 없는 탓에 치료를 더이상 이어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소년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게 됐다.
이듬해 2월, 정신과 의사 Dr. Brocq는 중증 우울증인 소년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상담 결과 질환의 원인이 선천성 이상 질환이 아닌 심한 사마귀로 판단되어 정확한 진단을 위해 소년에게 최면 치료를 해보기로 하였다. Dr. Brocq는 소년에게 ‘오른쪽 팔의 사마귀가 깨끗이 낫는다’라는 최면과 함께 치료를 시행했다. 최면 치료 5일째가 되던 날 병변이 엷어지더니, 8일 만에 오른쪽 팔의 피부가 정상에 가깝게 좋아졌다. 한쪽 팔이 깨끗해지니 소년의 정신적 상태도 나날이 좋아졌고, 치료 한 달째 드디어 전신의 병변들이 기적처럼 호전되었다. 이듬해 이것이 영국 의학 저널에 실리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소년이 앓은 피부병은 선천성 어린선 중에서도 유전자 이상에 의해 생기는 난치성 질환이었다. 현대 주류 의학적 시각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병변을 사마귀로 오진하고, 그것에 최면 치료를 시행한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Dr. Brocq과 소년은 나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유전자 표현형을 바꾸었다.
또한 질환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 환자 중에는 선생님 얼굴만 봐도 낫는 것 같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의사가 실제로 실력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신뢰가 바탕이 되면 어떠한 약물이나 수술적 치료 없이도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플라시보(placebo) 처방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되는 환자들이 있음을 우린 다수의 임상 실험 결과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스트레스와 질병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환자의 심리적 요인 조절, 마음 관리를 위해 의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의사는 기본적으로 힐러(Healer)이다. 내가 불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들이 전생에 유능한 치유자였거나 예언자, 지도자였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일부 동의한다. 실제로 개개인의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열쇠는 그 개인에게 주어져 있지만 그것이 안 되어 의사를 찾아온 환자에게는 의사가 특별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준비된 모든 의사와 환자는 Dr. Brocq과 소년처럼 질환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원인 치료보다는 결과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증상 조절 치료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증상이 악화와 호전을 반복한다면 반복되는 질환은 원인을 찾아야 하고 그 원인을 관리해야 재발을 최소화하거나 막을 수 있다. 원인이 마음에 있다면 그것을 치료해야 한다. 필자는 건강 검진 파트에 근무하고 있다.
환자들이 검진을 위해 주기적으로 내원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인지 부쩍 환자 수가 늘어났다. 늘어난 환자군을 보면 고혈압 전단계에서 고혈압으로, 당뇨 전단계에서 당뇨로, 특히 체중 증가, 비만 환자군이 늘었다. 체중 증가의 경우 기본적으로 운동, 식단 등 관리가 첫 번째이겠지만 들여다보면 스트레스, 마음의 허기, 즉 마음의 병인 환자들이 많았다. 2021년 3월, 다시 봄이 되었다.
올해도 나는 환자 내면을 훤히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의사가 되도록 수련할 것이다. 더불어 환자들도 내면 관리에 힘써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길, 그래서 더 건강해지길 간절히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