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 이어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석연찮은 삼성 찬성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누군가의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닌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29일 국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7일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을 가진 50개 기관투자가가 삼성물산 주식 1077만주(6.894%)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삼성 계열사인 삼성자산운용(0.697%, 109만주)을 제외한 49개 기관투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찬성표(6.197%, 968만주)를 행사했다.당시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이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를 권고했음에도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사실상 삼성에 찬성표를 몰아준 셈이다.특히 삼성물산 지분 2.85%(445만9598주)를 보유하고 있어 캐스팅보트로 주목받았던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경우 내부적으로 반대 의견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운용담당 임원 등 3명이 수익률 관점에서 합병 반대가 유리하다는 입장을 냈지만 나머지 7명이 찬성 의견을 내면서 7대3의 비율로 찬성으로 확정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제일모직 지분(0.9%)보다 삼성물산 지분이 세 배 이상 많은 한국투신의 경우 합병비율이 높을수록 절대적으로 유리했다"며 "고객 돈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한국투신이 삼성 편을 들어주다 펀드 투자자들에게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그는 그러면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합병찬성 과정에 최순실이나 청와대의 개입, 삼성과의 부정한 거래나 외압 등이 없었는지 조사를 통해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투신운용 관계자는 "당시 삼성물산 합병 찬성과 관련해 외압이나 자의적인 판단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통합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 판단해 합병을 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한국투신운용 외에는 메트라이프생명(0.455%), 트러스톤자산운용(0.364%), 한화생명(0.250%), 브레인자산운용(0.229%), 교보생명(0.228%), 에셋플러스자산운용(0.166%), 키움자산운용(0.147%), KTB자산운용(0.130%), KB자산운용(0.122%),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0.115%), 미래에셋자산운용(0.114%) 등의 순으로 삼성물산 지분을 많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삼성물산 지분 6.197%를 보유한 이들 49개 기관투자자는 일제히 찬성표를 던졌다. 가까스로 합병안이 통과된 것을 감안하면 기관투자자들이 합병 성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제윤경 의원은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합병비율이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를 권고했음에도, 반대표를 행사한 국내 기관투자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며 "당시 합병 찬성을 종용한 삼성 측의 로비가 엄청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해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의 경우에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등 청와대(최순실)·삼성·국민연금의 커넥션 의혹에 휩싸인 상태다. 이들 기관투자자들도 누군가의 외압에 휘둘렸거나, 혹은 부정한 청탁을 받고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선관주의의무(자본시장법 제244조)를 위반해 투자자에게 손실을 끼친 게 된다. 이 때문에 삼성 측의 전방위 로비의 불법성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당시 삼성 합병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내 화제가 됐던 한화투자증권의 주진형 전 사장도 이같은 의혹을 제기했다.주 전 사장은 최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삼성이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것 자체는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며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의견으로 듣고 독립적으로 판단해서 결정을 했다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이어 "외국인 투자가들은 대부분 반대를 했고,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다 찬성을 했다"며 "이는 독립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기관투자자들은 삼성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합병에 반대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반대할 경우 사실상 찍혀 수천억원에 달하는 삼성 계열사의 자금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의 경우 자산 아웃소싱을 엄청나게 많이 한다"며 "삼성이 찬성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부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