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신촌문예’가 뭐길래...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6.11.15 14:53 수정 2016.11.15 14:53

낙엽이 지면 도지는 병이 있다. 이른바 신춘문예 열병이다. 요즘 유행하는 ‘신종플루’이상의 불치병(?)이 신춘문예 열병이다. 문학도라면 신춘문예열병을 해마다 연말연시에 앓아 봤을 것이다. 단풍이 끝나고 낙엽이 질 무렵, 일간신문 마다 신춘문예공모사고로 러시아워를 이룬다. 모집 장르도 여러 부문이고 당선 상금(고료)도 글을 써서 벌기 어려운 거음을 투척하고 있다. 나도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전까지는 신춘문예 열병을 심하게 앓았다. 우리나라에 신춘문예가 처음 시행된 것은 일제치하인 1925년 동아일보에서 처음 시행되었고 뒤이어 1928년에는 조선일보도 신춘문예를 실시했다. 우리나라의 주요 작가와 시인들이 신춘문예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요사이 ‘친일인명사전’이 출간되어 때아닌 평지풍파를 몰아왔다. 일제의 식민지 관료가 되느니보다 문필가가 되어 민족적 양심을 지키겠다고 문학가의 길을 즐겨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친일파 문인이 되어 명예롭지 못한 사전에 등재되었으니, 쪽박을 쓰고 벼락은 피한다지만 사람으로 자기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한창 신춘문예작품을 접수 중에 있고 며칠 안 있으면 응모마감이 될 것이다. 시 부문을 보면 적게는 1천여 편에서 많은 경우엔 3,4천편 심지어 5천편에 육박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신문의 발표를 그대로 믿으면 순진한 사람이다. 자기 신문의 위신을 위해 간혹 뻥튀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2배 이상 조작은 하지 않을 것이다. 신춘문예 부문별 당선작은 고작 1편인데 웬 응모자가 이렇게 많은지 의아스럽겠지만 많은 당선 상금이 미숙한 문학도들에게도 응모를 부추긴다.신춘문예 당선 문인이 아닌 문인 중에는 신춘문예를 복권당첨 정도로 비하시킨다. 복권당첨을 전적으로 행운이요, 신춘문예 당선은 창작실력이 주요 변수가 되는 만큼 복권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요, 자격지심이란 생각이 든다. ‘신춘문예’란 이름의 유래는 당선작 발표를 1월 1일, 설날에 하기 때문에 설날을 신춘(新春)이라 하므로 신춘문예라 한다. 구태여 신춘문예 대신 우리말로 표기하려면 ‘설날 문예’라 하면 된다.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나면 당전작 발표 때까지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당선이 될 경우, 대개 성탄절을 전후하여 신문사로부터 당선통보를 받고 당선소감을 보내야 한다. 운 좋게 단발에 명중하면 좋겠지만 신춘문예는 평생을 도전해도 당선은 그만두고 최종심사에 못 이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나도 신춘문예 최종심사에 두 번 올랐고 (1964년 서울신문, 1965년 동아일보)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됐고 그때 내 나이는 만 25세였다. 내가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처음 본 것은 1957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가작인 무원 김기호님의 ‘청산곡’이었다. 당시 고시조밖에 읽은 적이 없던 나에게 김기호 시인의 ‘청산곡’은 참신하기가 ‘새 하늘과 새 땅’같았고 ‘이렇게 지은 시조도 있구나’는 생각에 머리와 가슴에 오래 남았다. ‘청산곡’을 읽은지 59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시조 ‘청산곡’2수를 완전히 기억하고 있다. 1957년은 뜻 깊은 해다. 1940년대 초 일제가 한글신문을 폐지시켜 자동적으로 신춘문예가 중단되고 다시 신춘문예가 부활 된 것이 1957년이다.신춘문예의 전성시대는 1960년대로 중앙 5대 일간지 신춘문예가 우수한 작가 시인을 다수 배출했다. 내가 지금도 안 잊히는 일은 1960년대 중반에 본 ‘빛이 없는 광장’이란 어느 독자의 투고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일정한 직장도 없이 오직 신춘문예 소설 당선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과년한 여자애인과도 소설이 당선되면 웨딩마치를 올리기로 철석같이 굳은 맹세를 했다. 몇 해를 계속 최종심사에 올라 올해는 틀림없이 당선되겠지 기대를 했지만 행운의 여신은 끝내 남성 예비 작가를 비켜갔다. 당시 29세던 아가씨는 남성작가 지망생과 결혼약속을 파기하고 부모의 강권을 못 이겨 딴 남자의 부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29세가 무슨 노처녀냐? 요사이는 29세라면 나 남없이 햇병아리 취급이다. ‘빛이 없는 광장’이란 독자투고를 한 애틋한 사연의 작가지망생은 그 뒤 2년 있다가 K신문 장편소설 모집에 가작 당선이 되어 애인을 잃어버린 아픔을 떨쳐버리고 작가로 일어섰다. 지금은 신춘문예를 모집하는 신문이 경향을 망라하여 29곳이 된다. 경북의 신예 일간신문 세명일보가 빠른 시일에 신춘문예를 창설해 우리나라 신춘문예 모집이 30곳이 되면 더욱 멋질 것 같다.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