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한 대학 교수가 자신이 키우는 달팽이의 짝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이 교수는 달팽이의 짝을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향후 자신의 논문에 공헌자(contributor)로 이름을 올려주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과연, 이 달팽이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일까.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짝을 찾고 있는 달팽이 ‘제레미’의 특별한 사정에 대해 소개했다.최근 영국 노팅엄 대학교 생명과학부 앵거스 데이비슨 교수는 런던의 퇴비더미 근처에서 한 달팽이를 발견했다. 정원이나 풀숲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갈색 정원 달팽이’였다. 그런데 수십 년 간 달팽이를 연구한 데이비슨 교수는 이 달팽이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자신의 연구실로 데려와 돌보기 시작했다. ‘제레미’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제레미의 특이점은 바로 등에 이고 있는 껍질에 있었다. 달팽이의 껍질은 소라 껍질처럼 나선형 모양으로 생겼는데, 일반적으로 나선은 그 중심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나 있다. 그러나 제레미 껍질의 나선 방향은 보통의 달팽이들과 달리 반시계방향이었다. 데이비슨 교수에 따르면, 제레미처럼 껍질의 나선 방향이 반시계방향인 달팽이가 태어날 확률은 1백만분의 1이다. 그는“20년 이상 달팽이를 연구했지만, 이런 나선 방향을 가진 달팽이는 처음이다”라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런데 사람으로 치면 ‘왼손잡이’정도라고 할 수 있는 이 껍질 방향 때문에 제레미는 짝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데이비슨 교수는 설명했다. 등 껍질의 나선 방향과 짝짓기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달팽이는 암컷과 수컷의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 생물로, 스스로 정자와 난자를 결합해 번식할 수 있지만, 보통은 짝짓기를 통해 번식한다. 달팽이는 짝짓기를 할 때 두 마리가 몸체의 오른쪽에 가지고 있는 암수 생식기를 서로 맞댄 뒤, 각자 자신의 수컷 생식기에서 상대의 암컷 생식기에 정자를 동시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교미를 한다. 그런데 제레미는 껍질의 나선방향도 일반 달팽이와 반대 방향일 뿐 아니라, 생식기의 위치도 반대 방향에 위치해 다른 달팽이와 교미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데이비슨 교수 연구팀은 제레미처럼 반시계방향 나선 껍질을 가진 달팽이를 찾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슨 교수는 제레미의 껍질 나선 방향이 특이한 것은 나선 방향을 결정짓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유전자의 이상으로 생식기의 위치도 반대 방향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에 연구팀은 제레미의 교미를 통해 태어난 새끼 달팽이 중 반시계방향의 나선 껍질을 가진 달팽이를 연구해, 이러한 증상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비슨 교수는 또 이 유전자가 사람의 ‘우심증’ 증상을 유발하는 유전자와 같은 것으로 보여, 이 연구가 우심증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심증’(右心症)이란 심장이 오른쪽에 위치하는 증상을 말하는데, 100만명의 1명꼴로 발생한다. 우심증의 경우 심장 뿐 아니라 장기도 반대 방향에 위치하기도 하며, 대개 심장병이 동반되고 발육과 호흡곤란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 우심증을 유발하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치료법도 개발되지 않았다. 이같은 이유로 제레미의 짝을 찾고 있는 데이비슨 교수는 “껍질의 나선 방향이 반시계방향인 달팽이를 가지신 분은 꼭 연락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향후 이와 관련한 논문을 작성할 때 제레미의 짝을 찾아준 사람의 이름도 공헌자로서 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