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사(玉山寺)는 안동시 북후면 벽절길 137번지에 있다. 이 절은 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국도 5호선을 따라 20Km 정도 떨어져 있는 북후면에 있다. 북후초등학교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가면 장기리 벽절골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길을 접어들어서 학교를 지나면 옥산사 입구를 알리는 표시판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동네 안으로 들어가면 옥계 강봉문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철종 11년(1860년)에 창건한 벽계서원이 있다. 벽계서원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 걸어 오르면 옥산사에 닿을 수 있다. 옥산사 오르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은 되었어도 노폭이 좁아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이며, 험하고 가파른 산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초보운전자는 걸어올라 가는 게 좋다. 산꼭대기에 가까이 갈수록 경사가 급해서 운전이 미숙한 사람에게는 힘이 많이 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발 417m에 위치하고 있어 안동시내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산세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접근성이 어렵고, 산중불교를 고수하다 보니 안동시민도 잘 모르고 있는 곳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학가산 옥산사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학가산 옥산사
안동지방에서 유일하게 마애불을 모시고 있고, 전국에도 유례가 드문 암굴 산신각을 모신 학가산의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옥산사라는 사찰보다는 마애여래약사좌상으로 더 많이 알려져 유명한 곳이다. 옥산사가 자리 잡고 있는 옥산(玉山)은 해발 417m이며 산의 정상 부근에 사찰이 있다. 산이 아름답고 숲이 울창하여 구슬과 같이 깨끗한 물이 계곡을 흘러 옥석(玉石)이 나던 곳이라 하여 옥산이라 지명이 붙었으며, 사찰은 산 이름을 따서 옥산사라 하였다.
◇ 유래와 전설
대한불교태고종 옥산사는 누가 언제 창건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절 뒤에 있는 마애여래약사좌상과 전탑지로 미루어 보아 신라 때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영가지에는 옥산사는 부의 북쪽 32리 떨어진 옥산 속에 있는데 그 북쪽 5리 지점에 바위굴이 있다. 월천전탑(月川塼塔)은 옹천역 남쪽에 있는 옥산의 북쪽에 있는데 5층이며 그 안에 석불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옥산사는 영가지가 편찬될 당시에만 해도 절과 전탑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절도 폐사되고 전탑도 파괴되어 지금은 탑재로 쓰였던 전돌 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화강암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전탑의 위치는 마애약사여래좌상에서 마주 보이는 곳으로 거리는 약 50m 정도 떨어진 능선에 있다. 마애불의 조성시기가 통일신라시대로, 이 전탑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영가지에는 서애 유성룡 선생이 수행하러 이 절에 왔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옥산사는 마애불과 전탑지로 미뤄보아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중간에 폐사되어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고, 1964년 임보현 보살(임추희 씨)이 새로 법당을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창 당시에는 현재 법당으로 사용하는 건물 1동을 지어 인법당으로 사용하였다. 중창 당시 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좌측 1칸은 방으로 꾸며 스님이 거처하였으며, 가운데 2칸은 법당으로 사용하였고 우측 1칸은 부엌과 방으로 사용하였다.
옥산사를 중창하니 많은 신도들이 끊이지 않아 새로 요사채를 짓고 법당도 4칸 모두 사용하게 된다. 요사채를 짓기 위해 준비할 때 중창자인 임보현 보살은 죽고 이어 월담(月潭) 스님이 이곳에 와서 요사채를 1971년에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당 뒤에는 월천전탑지로 오르는 길섶에 옥산사 중창유래를 적은 비석이 서 있는데 그 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옥산사는 천 수백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고, 사자(寺字) 주위에는 천연동굴을 위시하여 석간 약수가 솟아났으며 뒤산 양벽 위에는 대자대비하신 약사여래불의 크신 상이 엄연히 존재하시어 천고에 부활하심이다. 라초 초기에 거센 배불사상과 포풍에 사자(寺字)는 도실되었으나 부처님 자비의 해후를 갈구하는 선남선녀의 기원하는 행렬이 끊기지 아니하던 중 영주에 거주하신 임추희(林秋姬)씨 불명 보현행보살(普賢行菩薩)을 중심으로 신도님들의 돈독한 신심으로 옥산사를 창건하였다”
◇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옥산사는 멀리 산 위에 마애불상이 있고, 앞에 대웅전이 있으며, 대웅전 뒤 바위굴 속에 산신각이 있다. 대웅전 동편에 탑을 세워 전체의 구도가 잘 조화되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해발 417m인 옥산(430m)의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자리한 대웅전(大雄殿)과 8칸의 요사채로 구성된 건축물과 법당의 좌측 뒤에 있는 자연석굴 속에 자리 잡은 산신각, 그 위에 마애약사여래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 대웅전(大雄殿)
월담 스님이 열반에 드시고 수제자인 지금은 법경 스님이 옥산사 주지로 있다. 대웅전 현판과 함께 대웅전에 능숙한 솜씨로 우측부터 4곳의 건물기둥에 쓴 주련에는 “부처님은 온 세상에 가득히 계시며/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난다네/ 인연 따라 두루 나아가 감응하지만/ 항상 깨달음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네” 라고 적고 있다. (한문을 한글로 번역)
■ 마애약사여래좌상(磨崖藥師如來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자료 제181호로 지정되어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법당(대웅전)의 좌측 뒤 높이 약 20m 정도 되는 자연암벽에 새겨져 있다. 이 자연암벽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마치 목을 쭉 뺀 거북이가 옥산의 정상을 향하여 기어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마애불은 바로 거북이의 머리를 떠받고 있는 바위 면에 조각되어 있다. 거북은 십장생의 하나이며, 용과 봉황, 기린과 같이 영물로 통하여 마애약사여래불을 받들어지는 신령한 동물이다. 거북은 오래 사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영물이므로 인간이 병들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섬겨왔고, 물과 불을 자유스럽게 왕래할 수 있는 동물로서 초자연적인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갈대와 같이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인 거북형상을 한 바위에,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고 섬기는 것은 믿음에 강한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옥천사 마애불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조각되지 않았나 싶다.
거북형상을 한 바위에 자신의 소망을 담고,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중생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해 주며 아픔을 아물게 하는 약사여래불을 조각하는 것은, 거북이 가지는 상징성과 약사여래불이 가지는 신앙적인 신비로운 힘이 잘 조화되어 인간을 구도해준다는 믿음에서, 가파른 옥산 정상에 마애불을 조각하였을 것이다.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암벽은 북동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가운데에 약사여래불을 조각하고 좌우 협시보살로 일광과 월광보살을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애불의 얼굴 모습이 너무나 정교하고 자비로운 표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더욱 거룩하게 보인다.
그러나 가운데 약사여래좌상만 뚜렷할 뿐 좌우 협시보살은 거의 마멸되어 윤곽조차도 알아볼 수 없다. 본존불인 약사여래불의 머리 위에는 넓은 바위가 마치 처마처럼 불쑥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이것은 모자의 차양처럼 앞으로 불쑥 내민 형태를 띠고 있어서 빗물이 마애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애불 방향이 북동쪽을 향하고 있어 청량산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광선은 최대한 받아들이고, 차가운 북풍은 거북 바위가 막아주며 비바람은 머리 위에 얹혀있는 바위로 하여금 맞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마애불의 정면 50m 전방에는 5층으로 된 월천전탑이 서 있어 해 뜰 무렵 탑신 사이로 쏟아지는 태양광선의 아름다움은 실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월천전탑은 부숴지고 현재 전탑지만 남았지만, 이러한 장관은 다시 볼 수 없지만 전탑이 복원된다면 마애불 창건 당시 옛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동지방에는 이 마애불 빼고는 다른 곳에 마애불이 없다. 학가산에 마애불을 조성할 만한 적당한 바위는 많아도, 어는 곳에도 마애불은 없고 오직 여기에만 있으므로 더욱 귀하다.
■ 산신각(山神閣)
대웅전 좌측 뒤에 있는 자연 동굴을 이용하여 산신을 모시고 있다. 마애불의 아래에 큰 바위가 있고, 그 아래에 여러 개의 바위가 모여 작은 석굴을 이루고 있는 굴속에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든 호랑이 등에 올라앉아 있는 산신상을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굴속이 어두움으로 불을 항상 밝게 켜두고 있는데 바위에 반사되는 불빛에 비치는 산신상은 더욱 준엄해 보인다.
■ 요사(遼舍)
요사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건축 재료는 시멘트 벽돌로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어 지어 팔작지붕을 한 건물로, 1971년 월담 스님이 손수 지은 집이다. 좌측 1칸은 부엌으로 사용하며 가운데 2칸은 방으로 사용한다. 우측 1칸은 관운장의 탱화를 모시고 있는데, 이는 옥산사를 중창한 창건주 보살이 관운장을 믿었기 때문에 사당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월담 스님이 지은 낡은 건물의 요사는 철거되고 아래에 새로 큰 요사를 지었다. 철거된 낡은 요사는 더욱 확장해서 큰 규모로 새로 짓고 있는 중이다.
험한 산속에 자리 잡은 옥산사의 전체 경내 면적은 약 1000평 정도나 되며, 이런 열악한 지형에 이처럼 넓게 자리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로 놀라울 뿐이다. 요사 옆 언덕에 월담 스님의 부도가 있다.
◇법경 스님(주지)과의 만남
오후 해가 땅에 떨어질 무렵에 옥산사에 도착했다. 힘들게 절에 도착하니 마침 주지 스님께서 혼자 계셨다. 법경 스님은 월담 스님의 수제자였다. 요사에 들어가 차 한 잔을 나누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대화를 나눴다. 주지 스님은 “그동안 병자, 노령자들이 주로 와서 기도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세대교체가 되어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법경 스님은 “지금은 요사채를 중창하다 보니 주변이 어수선하다. 워낙 가파르고 오기 힘든 곳에 산사가 있다 보니 신도들이 많이 찾지 않고 있어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북후초등학교까지 오던 시내버스 횟수도 줄었고, 이외에도 도로확장, 축대 등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산중의 신도 힘으로는 어렵고, 포교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서 꼭 가볼만 한 곳, 산세가 너무 아름답고 힐링이 되는 곳. 옥산사를 뒤로 하고, 멀리 노을로 물든 안동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산사를 내려왔다.
조덕수 기자 duksoo11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