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4차선 도로 중간지점, 안동과 영주의 경계지점 부근에 우측으로 일출사로 가는 안내표식이 있다. 그곳에서 20여 분 가다보면 봉수산 일출사로 올라가는 좁은 도로가 나온다. 좁은 도로를 따라 조심스레 운전해서 오르면 내륙에서 해맞이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다는 일출사가 자리하고 있다. 봉수산 일출사의 해맞이는 강원도 정동진보다 더 빨리 볼 수 있어 전국에서 제일 먼저 해를 보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6세기)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일출사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봉수산 일출사
경북 안동시 녹전면 일출길 207에 소재한 봉수산 일출사는 안동에서 북쪽으로 2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녹전면은 중앙의 오동산(梧桐山)을 중심으로 북쪽은 산지가 많고 남쪽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역계천(逆溪川)이 북쪽으로부터 흐르고 있다.
일출사로 접근하는 길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녹전면 소재지인 새터 마을에서 999번 지방도로를 따라 사천리(沙川里)를 따라서 9Km 정도를 가면 되는데, 이 길은 승용차 이동이 가능하며 해발고도가 577m인 박달산(博達山)과 570m인 봉수산(熢?山)을 감아 돌아가는 험준한 도로로 주변 경치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일출사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은 안동에서 영주로 난 국도를 따라가면 예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은 영주와 봉화로 가는 갈림길이다. 여기서 봉화로 가는 915번 지방도로를 들어서면 우측에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으며, 그 뒤편에 작은 등산로가 있다. 이 등산로를 따라 산을 넘으면 일출산 뒷편이 나타난다.
일출사는 봉수산의 8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출사 아래에 있는 마을은 구룡골이라 하는데 봉수산에서 뻗어 나온 산세가 아홉 마리 용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출사가 위치하고 있는 봉수산은 안동시 녹전면과 영주시 평은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옛날에 봉수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아있고 이름도 그렇게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은 해발고도 555m를 넘는 고지대이지만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 유래와 전설
일출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 고운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으며 신라 법흥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현존하는 기록이 없어서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일화나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의상대사가 이 사찰을 창건할 때에는 5명의 스님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점차 불사가 늘고 사세가 커져 스님들도 100여 명이 있는 커다란 화엄도량이 되었다. 풍수학적으로는 최고의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출사를 창건할 때에는 작은 절이었으나 후에 스님들이 많이 모이자 생활하기에 불편하고 물도 모자라자, 의상대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물을 끌어올려 우물을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앞의 이 우물은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우물은 신기하게도 이 사찰의 주지가 잘못하면 우물의 수위가 내려간다고 하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으며 위와 아래로 물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중창불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더욱 이름난 사찰이 되었고 귀중한 문화재와 성보(聖寶)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많이 소실되어 사찰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최학수 스님이 와서 6·25 한국전쟁 때 임시로 대웅전을 건립하고 거처하였다. 최학수 스님 이후에 봉정사에 있던 윤성건 스님이 일출암으로 와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다가 주지로 본원이 오게 되었다. 본원은 주지로 7년간 있으면서 사찰명도 일출암에서 일출사로 바꾸었고 봉수산을 임의로 봉화산으로 바꾸었다. 그 후 본원이 일출사를 떠나고 1997년 주지인 묵가가 부임했다. 묵가 스님은 안동이 고향인데 오랫동안 선방생활을 하다가 몸이 아파서 고향으로 내려와 한동안 서악사에 있다가 일출사의 주지로 부임하였다. 묵가는 주지로 있으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일출사에 사비를 내어 재정을 충당하였으며 또 대웅전의 중창불사를 가질 계획을 세웠다. 현재는 지오 스님이 주지로 있으며, 일출사에 온지 2년 정도 되었다며 선방을 활성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건축물의 구성과 배치
일출사는 산중턱의 비교적 넓은 터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불사가 없었던 관계로 건축물이나 부속물들은 많지 않는 편이며 산문(山門)이나 일출문 등도 없다. 일출사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은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다.
◇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최학수 스님이 6·25 한국전쟁 때지은 것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 전의 대웅전은 현재 산신각 앞에 있는 밭에 지어져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그 흔적들이 경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대웅전은 정동향을 하고 있는데 정면 산등성이에서 해가 뜰 때에 대웅전의 문을 열어 놓으면 햇살이 본존불의 상호와 마주친다고 한다.
현재 대웅전은 경내에서 보면 조금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아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붕은 맞배기와지붕으로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겹처마로 되어 있다. 정면의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였으나 측면과 뒷면에는 각기둥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공포는 익공양식으로 건물에서 풍기는 아담한 분위기에 한층 더 빛을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외부와 내부에는 단층을 하였으며, 외부벽인 상단부에는 여러 보살상과 달마조사 등의 벽화를 그렸다.
대웅전 내부에는 본존불과 협시보살 등의 불상과 탱화가 있다. 현존불로는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크기는 높이가 50Cm 정도로 작은 편이나 영험이 있는 부처님으로 소문이 났다. 이 부처님은 사찰이 없어졌을 때 민가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사찰을 새로 건립하여 다시 모셔온 것이다.
본존불은 불단의 한 가운데에 홀로 봉안되어 있는데 그것은 협시보살을 가까이 두면 싫어한다는 말이 전해 내려와서 그렇게 모셨다고 한다.
본존불의 협시보살은 왼쪽에 관세음보살이 있고 오른쪽에 아미타여래가 있다. 협시보살 역시 각각 한 칸의 불단 위에 모셔져 있으며 그 사이에 인등(引燈)을 설치하였다.
벽면에는 탱화들이 걸려있는데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의 뒷면에는 후불탱화가 있고, 아미여래타불의 뒷면에는 지장탱화가 걸려있으며 관세음보살 뒷면에는 칠성탱화와 독성탱화가 걸려있다.
대웅전에 있었던 탱화 중 후불탱화와 독성탱화는 매우 오래되어 귀중한 가치가 있었으나 도중에 소실되어 새로 마련하기도 했다.
◇ 삼성각(三聖閣)
경내의 남쪽 작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었다. 규모는 정면 1칸 반, 측면 1칸으로 지붕은 슬레이트로 처리하였고 벽은 시멘트다. 산신각은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반 칸만 사용하고 있다. 일출사에는 산신각이 없어 산신을 대웅전에 모셔두었는데 윤성건 스님이 와서 건립하였다. 내부에는 산신과 용왕을 모셔놓았다.
◇ 요사(寮舍)
일출사의 요사는 2동이다. 그 중 하나는 대웅전의 왼쪽에 있는 것으로 선열당(禪悅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최학수 스님이 건립한 것이다. 처음 이 요사를 지었을 때는 초가지붕이었으나 현재는 슬레이트 지붕이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막돌허튼쌓기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한 때는 이 요사의 가방(假房)에 본존불을 모셔두기도 하였다.
또 하나의 요사는 경내의 북쪽에 있는 것으로 남향을 향하고 있다. 이 요사는 본원스님이 건립한 것으로 심광당(心光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 요사는 현대식 건물이며 신도들이나 손님이 오면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한다. 현재 선열당에는 주지 스님이 기거하고 있다.
대웅전 앞마당은 축대를 쌓아올렸는데 이 축대에 맞대어 종각을 지었다. 종각이 있는 곳은 원래 방앗간이었으나 윤성건 스님이 그 위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크기에 사각기와지붕으로 된 종각을 만들었다. 현재 종각에는 법고만 있으며 종은 대웅전 안에 있다. 일출사 경내에는 이밖에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물과 느티나무 등이 있다.
우물은 2곳으로 하나는 대웅전 앞에 있는 것으로 의상대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대웅전 옆에 있는데 이 우물의 물을 떠서 부처님에게 바친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모두 3그루로 하나는 조상나무이고 나머지는 부부나무이다. 일출사 경내에는 연못이 있다.
◇ 지오 스님(주지)과의 만남
일출사에서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차경)은 절묘하다. 자연그대로 빌려와 정원으로 삼는다. 부석사보다 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일출사 차경의 아름다움, 정동진보다 해가 먼저 뜨는 곳.
정동향을 보고 있는 일출사는 하지부터 동지까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른 아침 안동댐의 운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신비함을 넘어 극락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찰 뒤쪽으로는 일몰도 볼 수 있다.
지오 스님은 “이른 새벽 눈을 뜨면 정동쪽에서 샛별(금성, 개밥바라기)이 주먹만 하게 뜬다. 샛별이 온 뒤에 뒤 이어 날이 밝아오며 훤해진다. 이 시간, 깨달음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며 “깨달음은 샛별과 관련이 있다. 스스로 삼라만상의 이치를 알게 되는 일출사는 경이롭다”고 했다.
점심 공양이 지난 시간 도착한 일출사, 아버지 같이 온화한 노 스님이 구워준 군고구마를 먹으며 마시던 차 한 잔이 그립다.
조덕수 기자 duksoo11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