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의 한 중학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박모(사망 당시 59세)씨.그는 지난해 3월부터 야간 당직 경비업무를 도맡아 근무했다. 매일 오후 4시30분께 출근해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심야 시간에 학교를 홀로 지키다가 퇴근했다. 하루 15시간의 야간 경비 업무를 맡아 일해오던 박씨는 누적된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말 학교에서 쓰러져 숨진 채로 발견됐다.유가족들에겐 박씨의 느닷없는 사망이 너무도 충격이었다.하지만 사망이후 확인된 박씨의 근로계약서는 유가족들에게 충격 이상이었다. 매일 매일 15시간씩 지켰던 박씨의 야간경비업무는 근로계약서상 단 6시간30분만 인정하는 것으로 잡혀있었다.나머지 시간은?계약서에서 박씨는 15시간중 6시간30분은 근로시간이었지만 나머지8시간 30분은 '휴게시간'이었다.당연히 박씨가 손에 쥘 수 있는 임금도 적었다. 박씨의 월급은 99만원.이쯤되면 사실상 현대판 '노예계약서'다.유가족들은 박씨의 사망에 대해 산업재해를 요청했다.하루 15시간에 달하는 과도한 업무가 사망 원인 아니겠느냐는 것이 유가족들의 주장이자, 하소연이었다.근로복지공단은 그러나 야간 식사시간 등을 포함하더라도 하루 7시30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 업무상 과로 인정 기준(주당 60시간)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 산재보험 지급을 거부했다.박씨의 근무형태상 휴게시간과 근로시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재해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사인이 불명확한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여기까지가 현실적인 한계. 사정이 딱하다고 법이 정한 테두리를 마구 허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나마 다행스런 소식.고용노동부는 최근 아파트 경비원, 학교 당직근로자 등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근로·휴게시간 구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뒤늦게 만들었다.가이드라인에는 야간 휴게시간 도중 학교에 외부인이 무단 침입해 대응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등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엄격히 구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정부는 가이드라인에 사업주가 임금인상 회피 등을 목적으로 휴게시간을 과다하게 부여하지 않고, 근로계약서 등에 휴게·근로시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출·퇴근시간을 기록·관리해줄 것도 당부했다. 노동계 반응은 긍정적이다.암묵적으로 이뤄져온 감시·단속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받아들였다.가이드라인을 계기로 근로·휴게시간을 둘러싼 노사 갈등과 다툼이 해소되고 대다수가 고령인 경비원과 당직근로자들의 고용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뿐.강제력이 없는 '권고' 수준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사업주의 양식'과 '정부의 의지'가 결합돼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현실성을 보장받아야만 박씨 같은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