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침
감미롭게 환상으로만 그려보던
엘리제를 만났다.
청소차에서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려나오자
엘리제는 연탄재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골목길을 나왔다.
베토벤이 연인 엘리제를 위해
지어 주었다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언제부턴가 청소차의 주제곡이 되었다.
꿈많던 소녀 엘리제도
세월이 평범한 주부로 만들어 버렸다.
식료품 가게에선 콩나물 한 줌이라도
더 많이 움키려고 바둥거리고
부엌에서 젖은 손을 한 주부 엘리제.
독일어의 엘리제는
영어로는 엘리자벳,
우리나라 이름으론 영자쯤 될까?
음악감상실에서 듣는 '엘리제를 위하여'보다
한길 청소차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한결 더 정겨운 나는 어느새
마흔 고개의 중턱을 지난 중년 사내였다.
(1988. 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