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의을 통과시킨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이번 사태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해임건의안 자체가 부당한 것이며 김 장관에게 제기된 의혹들 중 사실로 밝혀진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장·차관 워크숍을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은 올해만도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나라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며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개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법안들은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이어 "이러한 비상시국에 굳이 해임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농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이날 워크숍이 전날 국회의 해임건의안 통과 직후 열렸고, 김 장관을 비롯해 정부의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던 만큼 박 대통령이 해임건의안과 관련해 부당한 의혹 제기나 정치공세에 휘둘리지 말고 국정에만 집중해 줄 것을 당부하는 정도의 메시지는 나올 것이란 예상은 있었다.그러나 박 대통령이 당초 전망을 뛰어넘어 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한 직접적인 유감을 표명한 것은 '절대 수용불가'라는 답장을 야당에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장관의 임명과 해임에 대한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가결된 해임건의안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수용불가 방침을 천명한 것은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 자체가 부당한 정치공세라는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에게 제기된 의혹 중 사실로 판명된 게 없는데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장관을 해임하려고 드는 것은 국정의 '발목잡기'라는 게 박 대통령의 인식인 셈이다.박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의 '형식적 요건'을 문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헌법에 해임건의 사유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이나 법률 위반, 정책 수립·집행의 중대 과실,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는 등 통상적인 해임건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해임건의안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여기에는 야당의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유임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에서 거대 야권에게 정국 주도권을 내줄 경우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이 가속화되고 집권 후반기 국정동력도 급격히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나아가 인사청문회 당시 야당의 '부적격' 판정에도 불구하고 김 장관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일 경우 '인사실패'를 자인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을 엄중한 대내외 위기 속의 악의적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민생 우선의 대통령 대(對) 정치공세에만 몰두하는 야권'이란 프레임을 공고히 하며 이번 사태를 정면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박 대통령이 이날 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주도한 야당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에 국민들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며 거대 야권과 사실상의 '협치' 종식을 선언했다.또 "저는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과 우리 국민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해야할 막중한 일들을 꼭 해내야만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며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선 듯 하고, 민생의 문제보다는 정쟁으로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는 실정이어서 장·차관들 마음도 무거울 것"이라고 지적했다.공직사회에는 "다시 한번 신발끈을 동여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모두 함께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국민을 위해 뛰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정치공세에 휘둘리지 말고 맡은 바 임무를 끝까지 다하라는 주문이었다.박 대통령은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이자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됐던 정윤회씨의 전 부인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현 정권의 비선실세라는 야당의 의혹 제기도 반박했다.박 대통령은 "저는 지난 3년반 동안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한 순간도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해 왔다"며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한시도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고 말했다.박 대통령이 이날 해임건의안 수용불가 방침을 밝힘에 따라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던 김 장관이 먼저 사의를 표명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해임건의안 통과 직후 "저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충분히 소명됐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힌 김 장관은 이날 장·차관 워크숍에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