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무는 늦가을이 오면 경주시에 있는 무장산에 한번 가보라 권하고 싶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절정을 이루는 경주시운곡면 국립공원 무장산 갈대숲은 그동안의 오색 치마 단풍 물결과는 또 다른 그윽한 풍경과 느낌을 가져다준다. ‘갈색 추억’으로 불리는 갈대의 향연은 무리지어 가는 바람의 날갯짓과 철새들의 울음소리와 어우러져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물결치는 갈대는 한낮의 햇빛을 머금을 때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햇빛이 지겹다 싶으면 서로 몸을 비비며 얼싸안고 흐느껴 운다. 저 고독한 몸짓은 그리움인가? 외로움인가? 옛 선조들은 갈대의 가치를 크게 활용했다. 갈대에서 대금의 떨림 막을 채취할 수 있었고, 갈대꽃으로는 빗자루를 만들기도 했다. 또 중간 줄기는 김발, 뿌리 근처의 굵은 줄기는 땔감이 된다. 갈대꽃은 아침나절엔 은빛을 띠지만 해가 절정에 이를 때가 되면 잿빛 색깔을 낸다 해가 질 무렵에는 황갈색을 연출한다. 햇빛을 받는 부분은 멀리서 바라보면 반짝임이 유난하게도 화려하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고단한 몸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 우연히 올려다 본 겨울하늘에는 달빛이 온통 세상에 하얗게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달은 늘 그곳에 있었으나, 일상에 찌든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마치 큰 발견이나 한 듯 경외감에 사로잡혀 발길을 떼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우리가 바쁜 현대생활에 쫓겨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며 산다고 말한 애너 퀸들런(AnnaQuindlen)은 저서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에서 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인지, 그리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치명적인 사실 조차도 잊고 산다고 안타까워했다. “들판의 백합화를 보라. 아기 귀에 난 솜털을 보라. 뒷마당에 앉아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어보라.” 그러면 인생을 어떻게 살 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고 소게했다.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마흔살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던 열아홉 살 때까지만 해도 철없는 여대생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중단, 집에서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통증이 심한 어머니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아주는 1년 사이 생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아름다운 사진들이 곁들여진 이 소책자에는 저자의 주옥같은 사색의 향기가 배어있다. 그는 삶과 일, 두 가지를 혼돈하지 말라고 조연하고 일은 삶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승진이나 고액연봉 넓은 집에 목매어 살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느 날 문득 심장발작을 일으키거나, 샤워를 하다가 문득 가슴에 혹이 잡힌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 저자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며칠, 몇 시간, 몇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며, 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이나 우리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교향곡의 멜로디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고 말한다. 목적지가 아닌 여정을 사랑할 것이며, 인생을 산다는 것은 리허설이 아닌 단지 오늘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 했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런 평범한 진실을 잊고 살게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여백을 만들고, 그걸 사랑하고, 사는 법, 진짜로 사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한다”고 우리에게 일러줬다. “사랑은 한가한 도락이 아니라 언제나 중요한 일임을 염두에 두라. 나는 매일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는 학생입니다. 이메일을 보내세요. 편지를 쓰세요. 어머니를 꼭 껴안아 보세요. 아버지의 손을 꽉 잡아보세요.” 저자는 뉴욕타임스에 연재했던 칼럼 ‘공과 사(public and private)’로 9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애너 퀸들런에게 올 겨울엔 무장산에 꼭 한번 초대하고 싶다. 찾아 와 우리들을 사색케 해주는 갈대숲의 향연, 혹독한 겨울바람과 맞서 현란하게 나부끼는 무장산 정상의 갈대의 풍광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고 눈물이 있고 따뜻한 그리움이 있다. 가파른 세상살이 보듬어주는 갈대의 긴 이야기도 있다. 더군다나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통쾌한 서부영화 OK목장의 추억도 바람소리 따라 성큼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