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달 19일 새벽 2시(한국시간). 유승민(34)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당선이라는 낭보가 전해졌다. 유승민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 결과 전체 23명 중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이건희(74) 삼성전자 회장의 투병과 문대성(40)전 위원의 임기 종료로 자칫 IOC 위원 없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를 뻔 했던 한국 체육계는 유승민의 당선으로 일단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다. ◇가치 있겠다는 판단에 지체 없이 도전= 은퇴 후 삼성생명 코치직에 매진하던 유승민이 IOC 위원을 떠올린 것은 지난해다. 잠시 꿈을 잊고 살았던 그는 주변의 조언에 힘을 얻어 도전을 결정했다.지난달 31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뉴시스와 만난 유승민은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있던 시기에서 계속 가르치느냐, 다른 쪽에 도전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면서 "어쨌든 한 번 밖에 없는 기회였다. 도전 자체가 소중하고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선수 위원 도전 배경을 설명했다. 같은 해 8월 사격의 진종오(37)와 역도의 장미란(33)을 제치고 국내 후보로 낙점된 뒤에는 본격적인 공부에 돌입했다. 오랜 해외 투어 생활로 익힌 외국어를 가다듬고 수시로 IOC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했다. 덕분에 12월에 진행된 IOC의 전화 인터뷰도 무사히 통과했다.유승민은 "필드에 오래 있어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이론이 부족했다. 영어 학원을 다니고 올림픽에 대한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하루에 26㎞ 걷기, 진심이 닿았다= 선수 위원은 오로지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투표로만 결정된다. 한 사람이 4명에게 표를 행사하는 방식이다. 인지도가 높은 이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유승민은 과거 네 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 한 개씩을 목에 걸었지만 다른 후보들에 비해 높은 명성을 보유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유승민은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나에게 더 큰 자극제가 됐다. 부담에서 해방돼 내 것만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IOC가 정한 공식 선거 운동 기간은 현지시간 7월24일부터 8월17일. 23일 리우에 도착한 유승민은 짐 풀기가 무섭게 현장으로 뛰어들었다.유세 첫 날부터 리우로 날아와 자신을 뽑아달라고 외친 이는 유승민이 유일했다. 하루라도 빨리 선거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27일 전세기를 통해 함께 리우로 가자는 대한체육회의 제안도 정중히 거절했다. 유승민은 "사실 그 기간에는 선수들이 많이 없다. 보통 개막 5일 전쯤부터 선수촌에 들어차기 시작한다"면서 "미리 적응을 하고 동선 파악을 빨리 하고 싶었다. 그때는 한 명이라도 더 만나면 남들보다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전략은 무조건 많은 선수들 만나기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선수촌을 돌며 인사를 건넸다. 차갑게 외면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밝은 표정을 지었고 '왜 너를 뽑아야 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오면 자신의 구상을 차분히 설명했다. "개막 전에는 하루 3만5000보 정도를 걸었다. 휴대폰에 찍히는 것을 확인해보니 26㎞ 정도 되더라. 발바닥에는 물집까지 잡혔다. 선수 때도 물집은 없었는데…"라며 웃었다.이어 그는 "선수들 마음을 얻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정말 몰랐다. 인종과 나라, 성별, 종목이 모두 다른 선수들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도 선수 시절에는 선거에 나선 선수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두 번이나 판세 뒤집은 승부사=유승민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 한 것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만 22세의 나이로 두 번째 올림픽에 나선 유승민은 4강에서 스웨덴의 탁구 영웅 얀 오베 발트너(51)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중국의 왕하오(33)였다. 그동안 유승민이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던 선수다. 하지만 결과는 유승민의 승리. 세트스코어 1-1로 맞선 3,4세트와 마지막 6세트를 모두 2점차로 가져갔다. 12년이 지난 2016년, 유승민은 아테네 대회 결승전과 마찬가지로 불리하다는 판세를 다시 한 번 뒤집었다. 유승민은 "선거 운동이 중반을 넘어간 시기에는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지나가는 선수들이 격려를 해주기 시작했고 나도 열심히 한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라며 "한 사람이 4명을 선택할 수 있어 운도 따라야 했는데 확신은 없지만 자신은 있었다. 정말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4번이나 선수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지만 단 한 번도 개·폐회식을 가보지 못했다던 유승민은 다른 당선자 세 명과 함께 이번 대회 폐회식에서 세계인과 인사를 나누는 영광을 누렸다. 화려한 신고식을 마친 그는 11월4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IOC 회의를 통해 선수위원으로서의 첫 발을 뗀다.유승민은 "기쁨보다는 책임감이 크다. 엄청난 중압감이 밀려온다"면서 "리우 올림픽이 끝나면서 세계의 시선이 평창으로 쏠려있다. 내가 IOC 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 같다. 최대한 빨리 업무를 파악해 내 역할을 매끄럽게 해내겠다"고 다짐했다.맡고 싶은 분과에 대해서는 "11월이 돼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교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선수들을 위한 교육 제공과 이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싶다"고 귀띔했다. 선수위원 당선 후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에도 선출된 유승민은 항상 낮은 곳에서 현장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동안에는 윗선에서 주로 대부분의 일을 해왔다면 이제는 그런 틀을 깨고 싶다. 내가 IOC 위원이 됐고 대한체육회 이사로도 선임됐지만 늘 나를 뽑아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서 지낼 것이다. 이를 잊지 않는다면 충분히 좋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