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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면 경쟁자 웃는다”

뉴시스 기자 입력 2016.08.16 16:07 수정 2016.08.16 16:07

올림픽이 괴로운 수험생·공시족‘풍속도’올림픽이 괴로운 수험생·공시족‘풍속도’

고3 수험생 박모(18)군은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좀처럼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손에서 책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수험생이지만 경기 결과가 궁금해 자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게 됐다.박씨는 "세계인이 즐기는 올림픽을 고3 수험생만 못 즐기는 것 같아 속상하다"며 "마음을 잡으려고 하지만 자꾸 우리나라 경기에 신경이 쓰여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재수생 김모(19)씨는 다른 경기는 외면하더라도 축구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하지만 새벽 4시에 하는 경기를 다 보고 나면 그날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일찍 귀가하고 만다. 평소 오전 6시에 일어나 학원으로 향하지만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2시간이나 일찍 일어나는 탓에 피로를 이기기 어렵다.김씨는 "새벽부터 축구를 보고 나면 학원 수업 내내 몸이 노곤하고 잠이 밀려온다"며 "최근 멕시코전을 본 이후에는 이틀이나 비몽사몽으로 지내는 바람에 목표했던 공부량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남은 경기 역시 최대한 챙겨볼 계획"이라며 "좋아하는 축구를 외면하고 공부에 매달려봤자 이런저런 생각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즐길 때 즐기고 공부할 때 공부하자는 생각"이라고 나름의 신조를 밝혔다.수능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수험생들은 물론 각종 고시생들 중에서도 올림픽 탓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특히 우리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를 시청하며 즐기고 싶은 욕구는 굴뚝 같지만 처지가 처지인 만큼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두 종목만 챙겨보자고 하더라도 새벽에 하는 경기를 시청하고 나면 낮에 급격히 무기력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재방송이나 하이라이트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푹 빠져 몇 시간이 지나도록 넋이 팔리기 십상이다.최근 인터넷에는 '교육 전문가들이 말하는 올림픽 기간 수험생 십계명'이라는 글이 퍼지고 있다. 이글은 지난 런던올림픽 때도 화제가 된 바 있다.여기에는 '시작하면 늦었다. 개막식부터 보지 마라' '알면 보고 싶다. 컴퓨터 앞에 앉지 마라' '휴대전화, 인터넷 보는 횟수를 절반으로 줄여라' 'TV 접근이 쉬운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라' '누가 보면 나도 보고 싶다. 가족들에게도 양해를 구하라' '내가 볼 때 경쟁자는 웃는다' 등 수험생·고시생 다수가 쉽게 공감할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연말 임용고시를 앞둔 이모(28·여)씨는 예전과는 달리 이번 올림픽에 거리를 두고 있다. 이씨는 "몇 년째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부 중"이라며 "그래도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스마트폰으로 하이라이트만 챙겨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여자라고 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대입 삼수생 서모(20)씨도 독서실에서 귀가하는 밤 10시부터 하이라이트 편으로 경기를 몰아 본다. 최근 펜싱의 박상영 선수 경기를 본 이후로는 지난해 초 재수를 결심했을 때의 '초심'까지 떠올리게 됐다.서씨는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고 체면을 걸 듯 혼잣말하는 모습이 아직도 인상에 남아있다. 나도 좌절하지 않고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 하면서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할 결심"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물론 올림픽에 전혀 흥미가 없거나, 의식적으로 관심을 끊고 밤늦도록 학교나 독서실을 지키는 수험생들도 많다.고3 수험생 한모(18)씨는 "올해 올림픽이 있어서 걱정했었는데 막상 내 주변에서는 올림픽 열기를 느낄 수 없어 평소와 다름없이 공부하고 있다"며 "올림픽의 들뜬 분위기보다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 이모(29)씨는 "아직 시험일이 많이 남았지만 올림픽을 보지 않는다"며 "4년 후에 또 볼 수 있는데 당장 욕심을 채우겠다는 건 내 처지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올림픽이 내 미래를 대신해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노모(32)씨는 "아침에 수험생들의 스마트폰을 걷고 저녁에나 돌려주고 있다"면서 "대체로 아이들이 올림픽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2002년 월드컵 때 고3이었던 우리 수험생 시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홀수해에 태어났으면 올림픽, 월드컵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올림픽과 오버워치(스포츠 게임)가 눈에 아른거려 미칠 지경' '올해도 여성들이 수능 상위권을 차지하겠군요' '삼수생인데 내년에도 공부해야 하나' 등 올림픽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이런 글에는 흔히 '올림픽을 보는 건 사치' '하이라이트로 만족해라'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동안 스마트폰도 끊고 공부에만 전념해 합격했다. 시험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등의 훈계성 댓글들이 붙곤 한다.그러나 올림픽 시청 욕구를 마냥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전문가 지적도 있다. 원하는 걸 억지로 참을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집중력에 악영향을 미쳐 공부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정신과 전문의인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경우 시간을 정해 한 시간 정도 다시보기로 올림픽을 시청하는 게 좋다"며 "올림픽이 주는 도전의식, 좌절 극복기 등을 통해 수험생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그는 "다만 새벽 경기를 챙겨 보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생체리듬이 깨지면 피로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이 피로감은 보통 수일 이내에 없어지지만 드물게는 몇주씩 지속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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