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단행한 개각은 집권 후반기 안정적 국정운영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평가된다. 소폭의 관료 중심 개각을 통해 내각의 안정화를 꾀하고 기존 국정과제를 잘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것이다.그러나 당초 4~6개 규모의 중폭 개각이 예상됐던 것에서 벗어나 3개 부처만을 대상으로 한 소폭 개각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지역안배를 비롯한 탕평인사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이른바 '회전문 인사'도 반복돼 국정 쇄신의 의미는 퇴색됐다는 지적이다.박 대통령은 이날 개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조윤선 전 새누리당 의원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을, 환경부 장관에 조경규 국무조정실 2차장을 각각 내정했다. 또 국조실 2차장에 노형욱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에 정만기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비서관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박경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를, 농촌진흥청장에 정황근 청와대 농축산식품비서관을 각각 임명하는 차관급 인사도 단행했다.이번 개각은 관료 중심 인사로 요약된다.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인 조 내정자와 현직 변호사인 박 신임 권익위 부위원장 외에 5명이 모두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출신의 관료들로 채워졌다.이는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과 집권후반기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만큼 새로운 일을 벌리기보다는 기존 국정과제를 잘 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고, 야당의 집중포화가 예상되는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에서 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면 안정적 스타일의 관리형 내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개각 폭을 최소화한 것도 장관 교체에 따른 관가의 혼란을 줄이고, 20대 국회에서의 첫 장관 인사청문회 부담을 덜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당초 개각 대상으로 거론됐던 부처 가운데 창조경제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의 경우 현대원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이 새로 임명된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아 개각시 처음부터 다시 손발을 맞춰야 하는 문제가 있었고,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난 해소라는 숙제 때문에 재신임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정부 출범부터 자리를 지킨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개각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고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둘러싼 주변국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급한 외교·안보 현안 대응을 위해 유임시킨 것으로 보인다.반면 농식품부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한번도 장관이 교체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환경부는 미세먼지 대책의 실기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는 점에서 개각이 단행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체부의 경우 박 대통령이 해외 케이팝(K-POP) 공연 등을 돌아보는 등 최근 부쩍 문화융성에 국정 드라이브를 걸면서 측근인 조 내정자를 장관에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번 개각 폭이 예상에 못미쳤고, 새 인물도 없이 '수첩인사' 논란이 재현됐다는 점에서 국정 쇄신과 민심 수습 효과는 반감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박 대통령이 재신임을 표명한 미래부의 경우 사무관 갑질 논란, 직원 성매매, 롯데홈쇼핑 인허가 비리의혹 등이 잇따라 기강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고용부도 박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개혁의 성과가 지지부진해 교체가 예상됐지만 개각 명단에서 빠졌다.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11년 2월 임명돼 5년 넘게 일하면서 야당과 각종 현안에서 갈등을 빚은 탓에 해임촉구결의안까지 제출된 박승춘 보훈처장도 자리를 보전하게 됐다.청와대나 내각 개편 때마다 불거졌던 회전문 인사 비판도 여전히 유효하다. 박근혜정부에서 첫 여가부 장관과 역대 청와대 최초의 정무수석을 지냈던 데 이어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또다시 부름을 받은 조 내정자가 대표적이다.박 대통령을 국회의원 시절부터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호흡을 맞춰온 최측근인 조 내정자를 두고 야권에서는 전형적인 '친박 돌려막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총선에서 비박계 이혜훈 의원에게 밀려 낙천한 데 따른 자리 챙겨주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또 박근혜정부 출범 때부터 농식품비서관으로 일해온 정 신임 농촌진흥청장, 2014년 8월부터 2년간 산업비서관으로 재직한 정 신임 산업부 1차관 등 청와대 비서관 출신을 중용한 것도 부족한 인재풀에서 비롯된 회전문 인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지난 11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건의에 따라 주목받아 온 탕평인사 역시 이번 개각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당시 이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탕평인사, 균형인사, 능력인사, 소수자에 대한 배려 인사 등이 반영이 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호남중용론'에 대한 기대감이 퍼졌던 게 사실이다. 호남 출신의 전문성이 검증된 인사를 개각에서 등용해 영남이나 수도권과의 균형을 맞추게 할 것이란 기대였다.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번 7명의 입각 대상자들 중 호남 출신은 전북 순창이 고향인 노 신임 국조실 2차장 뿐이었다. 나머지 인사들은 영남권과 충청권이 2명씩, 서울과 강원이 각 1명씩으로 박근혜정부의 호남 홀대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각종 의혹으로 야권의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이번 개각의 인사검증 책임자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의혹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 없이 특별감찰을 받고 있는 우 수석이 개각을 위한 인사검증을 주도한 것 자체만으로도 향후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어서다. 가뜩이나 진경준 검사장 구속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의 부실 검증 책임론이 불거진 상황인데 만일 인사청문회에서 일부 후보자들의 도덕적 흠결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당장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개각에 포함된 인물은 모두 우 수석의 검증을 거쳤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 검증한 사람을 어떻게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국민의당도 "박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은 국정 쇄신도, 민심 수렴도, 지역 탕평도 없는 3무(無) 개각"이라며 "이번 개각은 쇄신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돌려막기식으로 장관 몇 자리 바꾸는 '찔끔 개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