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31일. 신태용 감독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당시 신 감독은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광종 감독 대신 U-23 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대회는 그해 여름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했기에 더 큰 관심을 모았다. 3위까지 자격이 주어졌는데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아 우려가 적잖았던 U-23대표팀은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진출, 일찌감치 리우행을 확정했다. 그리고 급하게 소방수로 뛰어든 신태용 감독의 리더십도 후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바로 1월31일 열린 대회 결승전 결과 때문이었다. 최종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다. 마지막 결실 직전에서 멈춰 준우승에 그쳤다는 것도 아쉬움이 남고 하필 상대가 일본이었기에 보다 씁쓸했는데 그 내용을 알면 더욱 허망했다. 당시 한국은 전반 20분 권창훈의 선제골 그리고 후반 2분 만에 진성욱이 추가골을 넣으며 승기를 잡았다. 워낙 일방적으로 몰아붙였기에 젊은 선수들은 마치 이긴 것처럼 흥분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미리 터진 샴페인에 취했던 한국은 이후 두고두고 회자될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후반 22분과 23분 거푸 2골을 내줘 동점을 허용했고, 후반 36분 역전골까지 내주면서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분위기상 절대로 질 것 같지 않던 경기가 거짓말처럼 뒤집혔다. 동시에 신태용 감독을 향하던 평가도 딴판이 됐다. 대회 내내 칭찬하던 이들이 갑자기 촉을 바꿔 비난을 쏘기 시작했다. 대회 후 신태용 감독은 "정말 그땐 내 판단 미스다. 2-0으로 이기고 있을 때, 이참에 골을 더 넣고 싶었다. 솔직히 '일본 너희들 죽었어'라고 생각했다"는 말까지 했다. 냉정하지 못했던 감독의 욕심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든 셈이다. 신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절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앞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입에 지독히도 쓴 약이 됐음을 고백했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시간이 흘러 신태용 감독이 또 하나의 한일전을 앞두고 있다. 오는 12월8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한국은 중국-북한-일본과 차례로 대결한다. 그 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신 감독은 올림픽 본선을 경험했고 U-20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FIFA U-20 월드컵도 나갔다. 그리고 축구계 안팎을 둘러싼 우여곡절 속에서 A팀 사령탑이 되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리더로 위치가 달라졌다. A팀 감독이 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위기가 있었다. 지난 10월 유럽 2연전이 끝났을 때의 분위기만 본다면 과연 계속해서 감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10일 콜롬비아전(2-1승)과 14일 세르비아전(1-1무)을 잘 마치면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놓았다. 어렵사리 마련한 반전 분위기를 이어가야하기에 E-1 챔피언십 결과는 자못 중요하다. 그 결과는 한일전 결과와 무관치 않다. 신 감독은 21일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며 "우승을 하기 위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우리나 일본은 우승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말로 전의를 불태웠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과 일본이 중국이나 북한보다는 우위이고 일정상 한일전이 가장 마지막(16일)에 열리는 터라 제대로 결승전 같은 배경이 깔릴 수 있다.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열리는 한일전이라 부담이 없다면 거짓이다. 앞선 2경기가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중국, 북한전)좋은 경기해도 한일전이 잘못되면 비난을 받고 선수들 사기도 떨어질 수 있다. 일본을 이길 수 있게 준비를 잘하겠다"는 말로 출사표를 대신했다.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한일전을 특별하지만, 지난 2016년 1월31일의 기억 때문에 신 감독에게는 더더욱 이가 갈리는 상대가 됐다. 그러나 흥분은 금물이라는 것을, 평정심을 잃어서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을 그때 한일전이 독하게 가르쳐주었다. 약 23개월 만에 다시 성사되는 한일전. 신 감독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