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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 94주기 추모식<김천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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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 94주기 추모식<김천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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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에서는 지난 31일 동락공원 구미과학관과 장진홍 선생 동상 앞에서 「장진홍 선생 94주기 추모식」을 광복회 구미시지회(지회장 김영수) 주관으로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장진홍 선생 유족을 비롯해 김호섭 구미시 부시장, 양진오 구미시 부의장, 보훈단체장, 광복회 회원,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선생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추모공연은 오태중학교 뮤지컬 동아리 「오뮤즈」의 ‘잡아들여’를 시작으로, 선주초등학교 뮤지컬 동아리 「마마뮤」의 ‘봄이 오네요’와 경북교육뮤지컬 헛지컬 소속 황문성 선생님의 ‘꿈에서라도’를 선보였다. 이어서 인칸토 솔리스트 앙상블이 ‘내 영혼 바람이 되어’, ‘영웅’, ‘바람의 노래’ 총 3곡을 공연였다.
양진오 부의장은 “순국의사 장진홍 선생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선생의 충의와 애국혼을 계승하고 발전 시키겠다”고 말했다.
김호섭 구미시 부시장은 추모사에서 “조국 광복을 위한 헌신과 투쟁정신에 감사를 드리며, 선생의 이념과 가치를 계승해 구미 혁신을 위한 정신적 원동력으로 승화시켜 나가겠다”고 전했다.
구미시는 지역 독립유공자 명예를 선양하고 시민들에게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왕산 허위 선생, 박희광 선생, 장진홍 선생의 추모식 개최를 지원하고 있다.
한편, 장진홍 선생(건국훈장 독립장, 1962)은 1895년 현재의 구미시 옥계동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1916년 조선보병대 제대 후 광복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그는 1918년 망명해 중국 봉천,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청장년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였고 이후 러시아 적백내전이 격렬해지자 국내로 귀국했다.
귀국 후 자신의 전답을 팔아 600원을 마련하여 3·1운동 과정에서 일제가 자행한 폭압 행위를 조사하고, 그 내용을 미군 하사관 김상철에게 전달해 영문으로 번역해 세계 각국으로 배부하도록 하는 등 독립운동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27년에는 폭탄 제조법을 익혀 제작한 폭탄을,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배달시켜 현장에 있던 은행원과 경찰에게 중경상을 입혀 민족 독립 의지를 널리 알렸다. 이후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1930년 7월 31일 사형집행일 하루 전날 대구형무소에서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인정하여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하였으며, 1995년 6월에는 국가보훈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