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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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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년 절도사 출신 조광윤이 왕위를 찬탈해 송나라를 세운다. 문신 중심 문치주의 시대를 열었다. 사대부와 서민사회가 되고 모병제와 황제 직속 금군제도가 시행되었다. 황제권을 강화해 동생 태종은 강남의 10국을 점령했다. 거란(요)에 빼앗겼던 연운 16주를 찾으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평화관계를 유지했다. 신종 때에는 북송이 당쟁은 격화되고 요와 금의 침략을 받아 두 황제와 황족 및 고관들 3000명이 잡혀갔다. 북송이 망한 후 고종은 남송으로 피난했으며 금과는 군신 관계를 유지했다. 그후에 몽골과 연합해 금을 멸망시켰으나 결국 몽골에 의해 남송도 망한다. 북송 남송 시대를 합하면 319년만에 송나라는 망한다.
1206년 징기스칸이 세운 몽골제국에 쿠빌라이가 즉위한 후에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국명을 원나라로 바꾸었다. 원의 세조 쿠빌라이는 중국적인 황제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남송을 멸한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북방민족이 중국 전체를 지배한 정복 왕조가 출현한다. 행정기구로 중서성, 군사기구는 추밀원, 감찰기구로 어사대를 두었다. 4계층을 두어 정복민족을 통치했다. 티벳 불교인 라마교가 들어와 중국의 지배종교가 됐다. 원나라 말기에 사회적 차별을 받아온 강남의 홍건을 쓴 농민들이 반원 반지주 반란을 일으켰다. 반원운동의 곽지원 군단에 속해있던 주원장이 원을 물리쳤다. 북방의 정복군이 세운 원나라는 93년만에 망한다.
1368년 주원장은 원을 물리치고 명나라를 세운다. 새로운 세제인 이갑제를 실시하여 몽고의 풍습을 금지하고 한족문화로 전환하려 했다. 6부를 황제에 직속시키고 황제권을 강화시켰다. 3대 황제 영락제는 수도를 난진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남쪽으로 안남(베트남)을 복속시켰다. 내부적으로는 환관의 세력이 강화됐다. 북으로 북로와 동남해로 왜구를 물리쳤다. 내각파와 동림파로 갈라져 파당과 당쟁이 만연했다. 산시 지역에 극심한 재해가 닥치자 산시 북부 중심으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이자성이 시안을 점거하고 국호를 대순(大順)으로 바꾸고 북경의 자금성을 함락했다. 이에 명의 숭정 황제가 자살하고 명나라는 276년만에 망한다.
1616년 후금을 세우고 만주를 통일한 누루하치가 사망하고 홍타이치가 민주족, 한족, 몽골족을 지배하는 1636년 국호를 대청으로 하는 대제국을 세운다. 청의 팔기군은 신해관을 넘어 이자성의 베이징을 점령한다. 4대 강희제는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러시아와도 최초로 국제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었다.1840년 아편전쟁 패배에 따른 배상금 지불을 위해 국민에 대한 착취와 억압으로 인해 농민들의 태평천국운동이 일어났다. 1889년 청일전쟁으로 반제국주의와 배외운동이 일어났다. 신해혁명의 기반이 조성되고 제국주의시대가 공화정치시대로 전환하게 된다. 277년만에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막을 내렸다.
1912년 임시정부, 북양정부를 거처 국민정부가 세워졌다. 제1대 중화민국 정부의 총통에 장제스가 선출됐다. 중일전쟁으로 중화민국의 경제기반은 무너졌다. 내륙 각지에서 일어나는 중국 공산당을 중국 국민당이 이길 수 없었다. 1949년 국부천대를 단행해 대만에서 입헌체제를 유지했다.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을 계승한 국민정부 대만이 분단될 때까지 37년간 지속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초대 주석 마호쩌둥에 의해 개국되어 지금까지 75년간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단일민족이 아닌 주변국과 접촉 왕래를 하면서 이어졌다. 중원을 차지하려는 동서 남북의 세력이 끊임없이 참략하고 탈환이 반복됐다. 당이 290년 송이 319년 왕조가 유지 됐으며 그 외의 나라는 짧은 기간에 왕국의 흥망이 반복됐다. 초기의 건국정신이 말기로 갈수록 부패와 폭정이 심해져서 멸망했다. 건국할 때 권력자를 죽이고 망할 때 권력자가 죽임을 당했다. 권력 유지의 수단은 살인이 였다. 도덕성이 높을 때 흥하고 죄악이 극심했을 때 망했다.
한 왕조가 1000년 500년을 가는 우리 나라와 달리 너무나 짧은 기간에 왕권의 부침이 무상했다. 중국 왕조를 지탱시킨 것은 노자의 도교와 공자의 유교, 석가의 불교, 기독교였다. 종교가 국가 윤리와 인간 도덕의 바탕이 됐다. 중국 역사 속에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사례가 있다. 역사 속에는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역사는 오늘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