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칼럼

'허무강' 건너 완성산 가세

김경태 기자 입력 2024.06.05 00:35 수정 2024.06.09 09:20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 미디어발행인협 회장‧언론학박사 이동한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누구나 예외없이 죽는다. 죽어서 간다는 내세가 있다고 하지만 확실히 믿기가 어렵다. 저 세상에 가보았다는 사람의 분명한 증거도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100년을 살다 간다 하더라도 길고 긴 역사의 흐름에 비추면 길 가는 나그네가 잠시 쉬었다.가는 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생은 흘러가는 구름이요, 잠시 떠있는 거품이요,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에 불과하다고 탄식을 한다. 태어날 때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사형 집행을 잠시 유예해 놓은 것이라고 비관 한다. 천재적인 사람일 수록 이같은 인간 존재의 상황을 자각하고 가출을 하고 구도의 길을 떠난다.

인간은 허무하다. 인간은 허무적 존재다. 아무리 인간을 잘 봐 줄려고해도 인간의 실존은 허무하다. 바람과 거품, 이슬이다. 시간이 지나면 훈적도 없이 사라진다. 저승으로 떠난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 왔다는 소식을 들어 보지 못 했다. 인간은 본래 아무 것도 없는 무한과 영원 속에 유한과 순간적 존재로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인간의 허무를 떼버릴 수가 없다. 무상이 타고난 팔자요, 숙명이다. 형벌이라면 낙인이요, 천형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로 긍정적 인생론을 주장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 인간 실존의 본질은 "나는 허무하다, 고로 존재한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금강경 32품에는 "모든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꿈, 물거품,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으며,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一體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始觀)"라고 하였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유위(有爲) 즉 조작이며 사실이 아니다. 보고 듣는 것은 착각이며 이 착각에 빠져서 집착하게 되고 고뇌의 감옥에 갖힌다. 아름답고 더럽고 기쁘고 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 순간에 머물다가 지나가는 몽상이라고 하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여기에서 끝낼 수없다. 인생의 현실이 허무의 강에 빠져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고해에 빠져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왜 고통의 차안에 빠졌는지 어떻게 이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벗어나서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른다. 이 몽매무지의 참상에서 한 가닥 빛이 있다면 '완성'이라는 말이다. 인간이 시공간속에 존재하면서 그냥 시종없이 변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완성해 간다고 하면 어떨가.허무의 강을 건너 완성의 언덕으로 갈 수 있다면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의 완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보다는 인간의 완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한 발 물러선 질문이 필요하다. 4대 성인의 교훈을 보면 한마디로 위타주의(爲他主義)다. 석가는 자비, 공자는 인의, 예수는 사랑, 마호멧은 포용을 가르쳤다. 육체적으로 보면 인간은 성장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는 것을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보면 인간의 성장과 완성은 이기적 존재가 의타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자기 중심적이었지만 성장하면서 타인중심적 인격자로 성숙하게 된다. 배우자를 위하고, 가족을 보살피고, 사회에 봉사하고, 인류를 위해 희생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완성되어간다.

이기주의자가 위타주의자로 완성해가는 것이 인생의 행로로 로드맵을 설정하고 나면 조금은 인생 행로가 안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허무와 무상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불경의 가르침은 이같은 인생무상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반야바라밀다"는 "지혜로 완성에 도달한다"는 뜻이며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는 "가자 가자 피안 가자 도두 함께 피안가자 오 깨달음이여" 이상의 내용을 보더라도 열반의 경지로 완성해 가자는 뜻이 담겨있다. 간단한 결론 하나는 인생은 완성을 위해 사는 것이다.

완성되면 어떻게 되는가. 체험해 보지도 않는 단계에서 그 답을 요구하는 것은 과욕이다.

불확실 하지만 추상해 볼 수는 있다. 성인 성(聖) 한자를 보면 북방 임(壬) 위에 즉 지상의 최고 위에 인간의 귀와 입이 있다 했으니 인간이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 완성은 자신의 타인화로 보면 상대를 위하다 보면 자신은 없어진다. 자신의 유위(有爲)는 없어지고 존재의 본래 근원인 무위(無爲)로 돌아가게 된다. 몽상세계의 번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경지다. 최선의 사랑과 최고의 희열만이 영원 무한히 있는 차원을 초월한 차원일지 모른다. 성불을 위해 수도하는 수행자들은 고해를 건너 성산(聖山)으로 가기를 염원한다. 이 성산에 이르는 최고의 기쁨을 느낄 때 무아(無我)의 경지가 된다. 그 무아가 나의 본래였다면 본래로 돌아간 것일가.


저작권자 세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