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지난 겨울 조류 인플루엔자(AI)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도 닭장(케이지) 사육이 지목되고 있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 관련 법령에 따르면 산란계(알 낳는 닭) 1마리의 최소 사육면적은 0.05㎡(25×20㎝)에 불과하다. 이는 A4 용지 1장보다 작은 넓이다. 보통 작은 닭장에는 닭 3~10마리가 들어간다. 닭은 몸에 붙은 진드기나 이를 흙에 비비는 방식으로 떼어내는데,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는 몸에 붙은 진드기를 몸짓을 통해 떼어내기 어렵다.좁은 공간에서 날갯짓 한 번 하기 어렵다 보니 스스로는 진드기를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진드기를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작은 닭장에 몰아넣고 닭을 키우면 진드기·이 같은 해충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살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가피하게 살충제를 사용할 때는 닭과 계란을 닭장에서 모두 빼낸 뒤 빈 닭장에 살포해야 하지만 밀집 사육을 하는 양계장 특성상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가 있지만 농장들은 닭장 사육을 포기할 수 없는 실정이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계란을 생산해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국 산란계 농가의 94%인 1370여곳의 농가가 밀집형 닭장을 사용해 닭을 키우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무항생제를 내세우는 친환경 인증 농가들도 여전히 좁은 케이지에서 닭을 키우는 것은 마찬가지 이다보니 이번 전수조사 결과에서처럼 오히려 일반 산란계 농장들에 비해 더 높은 비율로 살충제 계란이 검출됐다. 좁은 우리는 그대로 둔 채 항생제를 안쓰다 보니 닭들이 진드기 등에 더욱 취약해져 살충제 사용 유인이 높아지는 것으로 풀이됐다. 앞선 AI 사태 당시에도 이 같은 밀집 사육이 닭의 활동성을 떨어지게 해 병에 취약해지고, 수많은 개체가 밀집해 있어 질병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감염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연스레 병이 생기고 급속도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반면 산란계를 좁은 케이지가 아니라 보다 넓은 공간에 풀어놓고 기르는 '동물복지 농장'들은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에서 모두 비켜갔다. 닭들이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흙 목욕'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자체 면역력을 키우다 보니 굳이 살충제를 써야 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닭 9마리를 1㎡ 이상의 공간에서 사육하는 이런 동물복지 인증 농장들은 현재 전국에 93곳만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도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는 공장식 밀집 사육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 나온다. 녹색당은 "공장식 감금틀과 공장식 축산방식을 그대로 둔 채 대책을 논하기는 어렵다"며 "반복되는 대규모 축산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선택해야 할 대안은 대규모 공장식 축산을 동물복지 축산 농장으로 전환하는 길 뿐"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지난 겨울 최악의 AI 사태를 겪으며 이미 지난 4월 산란계 1마리당 최소 사육면적을 0.05㎡에서 유럽 수준인 0.075㎡로 50%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법 개정 작업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선진국에서는 대형 유통업체가 앞서서 밀집 사육 계란을 추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유통업체인 미국의 월마트와 3위인 영국의 테스코는 "2025년까지 매장에서 밀집 사육 계란을 100% 퇴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실제 효과를 가져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허태웅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AI 후속조치로 당초 지난주에 문제가 된 밀집 사육 개선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살충제 계란 사태가 터지면서 대책 발표를 미루고 이번 사태까지 반영해 추가 보완한 조치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