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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흐르는 세월이 추억을 만들다

세명일보 기자 입력 2017.08.08 10:25 수정 2017.08.08 10:25

사람을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라 하지만, 필자(나)는 ‘사람은 나고, 세 살때(1945년)식민지 조선이 해방되고, 1948년에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전에, 국방경비대가 창설되고, 5.10총선이 있고, 의무교육1기생으로 초등학교(초등학교) 1학년에(1948년 9월3일) 입학했다. 국방경비대가 창설되는 걸 목격하고, 단군 개국 이래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전을 보아서, 자연스럽게 병정놀이와 정치에 초보적이나 안목(眼目)이 열리게 되었다. 어려서(중학교시절)부터 동아일보를 탐독하여 정치에 관심이 깊어, 학창시절 16년 동안,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단 하루도 밤을 샌 적이 없었지만, 고2시절 4대 국회의원 개표방송을 듣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내심 민주당 후보(윤만석)가 되기를 바랐지만, 물량공세가 적중하여 자유당 후보(이동녕)이 3만5천여표를 득표하여, 1만 7천여표를 딴 민주당후보(윤만석)를 더불 스코어로 눌러, 뜬눈으로 밤샘한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나이 들고 생각해보니, 정치에 미친 학생보다, 공부에 미친 학생이 백배 낫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지만, 황금시대는 허무하게 지나가고 말았다. 필자가 문경지역 중심학교인 문경중에 입학한 것은, 1945년으로 나이 만12세 때였다. 필자가 문경중에 입학하니, 제1운동장에 1205건설 공병단소속 철교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점촌과 가은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 문경선을 부설하기 위해서 였다. 1년 공사 끝에 드디어, 산업철도 문경선(점촌→가은)이 개통되어 국가산업발전에 큰 획을 긋게 되었다. 1955년 가을에 있던 문경선 개통식은, 문경중학교 교정에서 열렸다. 실공중학교 학생인 필자(나)가 학교 잘 만나, 개통식에 임석한 제1공화국 김일환 상공부장관과 이종림 교통부장관을 뵙는 영광(?)을 누렸다. 촌놈으로 제 바닥에서 각료(장관)를 두분이나 뵙다니 머시기한 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행운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전․현직 대통령을 서울이 아닌 고향 문경(점촌)에서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대통령을 처음 뵌 것은, 1957년 문경고 1학년 시절 가을에, 대한양회(시멘트) 주식회사 문경공장 준공식이었다. 마침 가정실습기간중이라 양회공장이 있는 신기에 갔다. 세단차(승용차)를 타고, 손을 흔드시는 이승만 대통령께, 크게 박수로 환영했다. 평생을 미국에서 항일 투쟁을 하셨는데, 거의 한 평생 타국에 사시다가 늘그막에나마 금의환국하여, 신생 대한민국이란 역작을 남기셨다. 붉은 탁류속에서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예사 사람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크신 업적에 비해, 너무 과소평가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기초한 건국공로자에 대한 적절한 예우가 꼭 있어야 하리라 확신한다. 대통령은 아니지만, 이승만 대통령을 보필한 전직 내무부장관 조병옥 민주당대표가 4대 국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한 윤만석 후보 지원유세차, 점촌 장날 오셔서, 고2 필자(나)가 조병옥박사를 보니, 인상은 호상(虎相)이나, 말솜씨는 수준급 놀변이었다. 윤보선 전대통령은 민중당 노시중국회의뤈 후보 유세차 점촌을 다녀가셨지만, 노후보는 차점자도 못되고, 득표율이 저조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북선 연장선(점촌→영주)개통식에 참석하여, 열차에 시승하여, 차 창밖으로 조그만 손을 흔들어 도열한 국민들에게 화답했다, 이승만대통령·윤보선대통령·박정희대통령 모두 서거하셨지만,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아, 역사속의 의인으로 부활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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