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익히지 않은 고기를 먹는 국내 식습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드럽고 씹는 맛이 좋다는 이유로 고기를 덜 익히거나 날것으로 먹으면 특정 대장균에 감염되거나 어린이들은 신장이 망가지는 후유증을 겪을 수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에서 햄버거를 먹은 뒤 ‘용혈성 요독증후군(이하 HUS)’이 발생해 신장기능의 90%를 잃은 4살 여자아이도 덜익힌 버거 속 패티가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국내 최초로 보고된 사례로 익히지 않은 고기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같은 사례가 지난 1982년부터 발생했다. 당시 덜 익힌 패티를 먹은 수십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정부 역학조사 결과, 대장균인 ‘O157:H7’에 감염된 패티가 유통된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소를 도축할 때 나온 O157균에 오염된 패티로 인해 집단 감염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O157균은 세균성·혈변성 장염을 일으키는 병원성 대장균의 하나로 독성을 지니고 있다.버거류 제품의 주요 재료인 패티는 여러 마리의 소를 섞은 고기로 가급적 완전히 익혀 먹어야 안전하다. 1982년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를 보면 미국인이 먹는 패티 1장에 평균 55마리에 소가 섞여있었다. 심한 경우 1000마리가 넘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제품 외에도 대형마트와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냉동패티나 고기류 제품은 대장균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충분히 익혀먹는 식습관이 필요하다. 손장욱 고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모든 음식은 충분히 익히지 않으면 균이 살아남아 위험하고 냉동패티도 예외가 아니다”며 “고기를 만들거나 조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고기뿐 아니라 깨끗이 씻지 않은 채소 역시 잘못 먹으면 위험하다”며 “충분히 익히고 씻어 먹는 안전한 식습관이 유일한 예방법”이라고 강조했다.덜 익힌 고기를 먹은 환자가 많은 ‘용혈성 요독증후군’은 오염된 음식과 음료, 우유, 물을 마시거나 유전적 원인, 의약품 부작용, 이식 거부반응 등이 발병 원인이다. 주로 여름에 환자가 발생하고 10세 이하 어린이가 많다. 이 병에 걸리면 물 같은 설사가 5~7일간 이어지고 혈변(피 섞인 변)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는 종종 구토와 복통을 호소한다. 이런 위장염 증세가 1주일 정도 지나면 혈관 속 적혈구가 깨지면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 결국 소변량이 줄어들고 3~6일간 소변을 보지 못하다가 경련을 일으키거나 정신을 잃을 수 있다. 용혈성 요독증후군의 사망률은 5~10%로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환자 50%가 완쾌하지 못하고 단백뇨나 고혈압, 신부전증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정도로 예후가 나쁘다.환자 나이가 2세 이하이거나 설사가 있으면서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은 경우, 혈액 내 백혈구 수치가 높으면 예후가 더 나쁘다. 질병관리본부는 “용혈성 요독증후군은 투석요법과 혈수분·전해질을 보충하는 치료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덜 익힌 고기에 의한 감염을 예방하려면 안전한 식습관이 중요하다. 우선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먹을 때 패티가 완전히 익혔는지 확인하고, 집에서 소고기를 조리할 때도 섭씨 68도 이상에서 속까지 완전히 익혀 먹는다. 가령 소고기는 색깔이 갈색이 되도록 익히면 안전하다. 생고기를 조리한 뒤 칼과 도마 같은 조리기구는 뜨거운 물로 소독한다. 생고기를 만진 손도 반드시 씻는다.박정탁 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미국은 집단감염 사태 이후 패스트푸드 패티를 150도 이상으로 익히도록 하는 등 정부 차원의 법 개정이 이뤄졌다”며 “고기를 익혀 먹는 식습관뿐 아니라 도축장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이어 “고기에 의한 대장균의 독성물질은 성인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어린이는 치명적일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공론화해 논의할 시점이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뉴스1